[월드브리프]IT업계 판도 바꿀 미래 M&A 10선

2010-04-29     박현선 기자
“MS가 IBM을 인수했습니다.”

이런 기사를 쓸 날이 올까요? 미 IT 전문 뉴스 사이트인 인포메이션위크는 IT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M&A 가상 시나리오 10선을 발표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것 같은 M&A가 아니라 IT업계를 위해, 또 기업의 CIO들을 위해 꼭 일어나야 하는 M&A라는 단서를 달았는데요, 꽤 흥미롭습니다. 최근 시스코, HP, 오라클 등 거대 IT 벤더들이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죠.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비슷한 영역에서 기존 사업과 보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의 기업을 인수했다면, 얼마 전부터는 데이터센터 솔루션이라는 이름으로 고객이 원하는 모든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전혀 다른 영역의 기업을 인수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통합 제공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조합’ 수준이 아니며 기술의 깊이 또한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솔루션 업체들이 이렇게 통합 인프라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것은, 경쟁사 솔루션과의 호환성을 위해 엔지니어링하고 유지보수하는 비용과 노력이 투자회수 관점에서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인포메이션위크는 업계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 순서대로 ‘일어나야 하는 M&A`를 발표했는데요, 10위는 세일즈포스닷컴의 사이베이스 인수입니다. 아마 실제로 벌어지면 큰 화제가 되겠죠. 일단 전통적인 DBMS, DW 업체인 사이베이스를 신흥명문 세일즈포스닷컴이 인수한 것이니까요.

◇세일즈포스닷컴에겐 사이베이스의 모바일 앱 개발 기술 필요=인포메이션위크는 세일즈포스닷컴이 사이베이스를 인수한다면 연간 매출 15억달러가 단숨에 두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세일즈포스닷컴이 사이베이스를 인수해야 하는 것은 DW나 DBMS 때문이 아닙니다. 사이베이스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및 관리 능력 때문이라고 하네요. 특히 SAP 솔루션에 대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바일 CRM, 모바일 ERP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9위는 델의 익스트림네트웍스 인수입니다. 요즘 HP의 쓰리콤 인수나 시스코의 UCS 서버 제품 출시 등 서버 영역과 네트워크 영역이 서로 통합되고 있죠. IBM의 네트워크 업체 인수 가능성 또한 거론되고 있고요. 미국 시장에서 델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HP, 시스코 등과 겨루는 데이터센터 솔루션 업체가 되기 위해 익스트림네트웍스 인수가 필요할 것이라고 합니다. 일견 이해가 됩니다만 국내에선 사실 썩 와닿진 않네요. 델이 익스트림네트웍스를 인수한다고 해서 국내 시장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진 않겠죠?

9위에 비해 8위는 공감이 가는 시나리오입니다. 시스코의 BMC 인수입니다. 사실 시스코가 네트워크 중심의 데이터센터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EMC, VM웨어, 넷앱 등과 제휴하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관리 소프트웨어입니다. IT서비스관리(ITSM)를 별도 구매해야 한다는 것인데 IBM, HP는 IT서비스 관리 소프트웨어도 함께 제공하고 있고 시스코에게는 비어 있는 부분이죠.

그런데 왜 BMC일까요? 4대 ITSM 업체 중 IBM, HP를 제외하면 BMC, CA가 있는데요, CA는 보안 사업에서 시스코와 사업이 충돌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인포메이션위크에서는 BMC의 평판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CA 회계부정 사건이 일어난 지 한참 되었습니다만 아직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통합 데이터센터 솔루션 플레이어 변신에 필요한 업체는?=이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IT업계 인수는 액센츄어의 HCL 인수입니다. 컨설팅과 서비스, SI의 명문인 액센츄어가 인도의 신흥 서비스&소프트웨어 기업인 HCL을 인수하는 것이죠. 대규모 개발, 유지보수 업무에 강점을 가진 HCL을 액센츄어가 인수하면 IT 서비스 시장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올 것이라고 하는데요, HCL이라는 회사가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본사가 HCL을 인수한다면 액센츄어서울사무소에도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액센츄어는 컨설팅 사업 중심으로 알려져 있지만 SI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HCL을 인수한다면 액센츄어는 컨설팅, SI, 커스터마이징(개발)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것이죠. HCL이 인도 회사인 것이야 인터넷 기반의 글로벌 데이터센터 환경에서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이고요.

6위는 IBM의 주니퍼 인수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시시한 감이 있습니다. 시스코, HP의 데이터센터 통합 솔루션 경쟁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IBM의 주니퍼 인수 가능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약 10년 전 네트워크 사업부문을 시스코에 매각한 IBM이 네트워크 업체를 다시 인수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합니다만 네트워크 사업부문을 10년 동안 그대로 갖고 있었다면 지금의 IBM은 없었겠죠. 인포메이션위크는 IBM이 서비스에 집중하다가 이제 다시 하드웨어를 강화하고 있다며 IBM에게 주니퍼 인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라클이 나왔습니다. 5위에 등장했는데요, 오라클이 인수해야 한다는 업체가 다소 낯섭니다. 아리스타라는 회사인데요, 아리스타는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오랜 경영자였던 앤디 벡톨스하임이 만든 회사입니다. 벡톨스하임은 전설적인 테크놀로지스트이기도 하지요.

아리스타는 기존 방식에 비교해 저렴한 비용, 단순한 관리, 그러면서도 엄청난 속도의 스위칭 성능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인포메이션위크는 오라클이 선 서버와 스토리지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마음이 있다면 아리스타를 인수해 스위칭 기술을 확보하라고 조언합니다. 특히 IBM과의 경쟁 의지를 온몸으로 불태우고 있는 오라클이 하이엔드 시스템 부문에서 IBM과 겨루고 싶으면 아리스타를 인수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제임스 고슬링도 오라클을 떠난 마당에 벡톨스하임이 오라클에 다시 들어갈까요?

◇HP, DW 사업 강화에 테라데이터 인수 고민해야=4위의 가상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바로 HP의 테라데이타 인수죠. 물론 HP도 네오뷰라는 DW 어플라이언스를 내놓고 있어 테라데이타와 충돌되는 사업부문이 있습니다만 HP 네오뷰의 시장점유율은 미미합니다. 네오뷰 사업을 접거나 DW 어플라이언스 제품을 이원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기업들이 시장 변화에 실시간 대처하고 미래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고급 비즈니스 분석(BA)에 관심을 쏟고 있죠. BI/BA 솔루션 업계의 마케팅 공세도 치열해지고 있고요. IBM이 코그노스에 이어 SPSS를 인수하고 SAP는 비즈니스오브젝트 사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오라클은 또 어떤가요, 엑사데이타 2.0을 내놓고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환경에서 통합(consolidation) DBMS 및 DW 어플라이언스로서 제안하고 있습니다.

통합 솔루션의 애플리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EDW와 BI는 HP에 부족한 부분인 게 사실이죠. 게다가 테라데이타는 금융권 고객을 다수 갖고 있으니 HP로서는 기술과 고객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제 생각으로는 HP가 테라데이터에 SAS까지 인수한다면 그야말로 화룡점정이 아닐까 싶군요.

4위에 비해 3위에 오른 EMC의 넷앱 인수 필요성은 동의하기 어렵군요. EMC에게는 없고 넷앱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거든요. 넷앱코리아의 오랜 고민은 글로벌 시장에서만큼의 인지도가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그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가상화, VTL, 아카이빙, 백업, 스토리지 등 EMC가 굳이 넷앱을 인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인포메이션위크는 EMC가 보안, 가상화, 콘텐츠 관리 기술 등을 아우르며 정보관리 기업으로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왔다며, 넷앱의 잘 구성된 스토리지 제품과 기술, 전략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야 HP, IBM, 오라클 등과 EMC가 겨룰 수 있다고 하는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스코와 EMC, 오라클과 EMC의 합병이 더 그럴싸해 보입니다만.

◇서버 하드웨어 없는 SAP, MS의 선택은?=2위는 SAP의 인포매티카 인수인데요, 시너지 효과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국내에는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지 의문입니다. 인포메이션위크에서는 인포매티카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과 공공 부문 고객들을 다수 확보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글로벌 시장과 국내 시장의 차이이겠죠.

SAP는 비즈니스오브젝트 인수로 확보한 BI 솔루션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비즈니스 통찰력을 얻기 위해 다각도로 분석하고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기반이 되는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다면 헛된 노력이겠죠. 그런 점에서 데이터 통합(DI)과 데이터 품질관리 전문 기업인 인포매티카를 SAP가 인수하는 것은 의미 있어 보입니다. 사실 DI 솔루션은 IBM, 오라클에 있거든요.

그런데 어쩌면 SAP는 IBM에 인수되는 것이 더 획기적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HP와 MS의 합병도요. 그렇다면 오라클(선)·IBM(SAP)·MS(HP)의 3강 구도가 되겠죠. 이럴 경우 오라클에 필요한 것은 컨설팅 업체 인수가 될 겁니다.

이제 드디어 대망의 1위를 발표할 차례입니다. 이 인수가 발표된다면 분명 충격적이긴 할 겁니다. 바로 MS가 레드햇을 인수하는 것이죠. 인포메이션위크에서는 양키스가 레드삭스를 인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합니다.

5년 전 MS는 윈도 환경과 리눅스 통합하려는 기업들을 지원할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했었죠. 하지만 6개월 전부터 MS는 서서히 변하고 있는데요,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진 것 같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으로의 올인, SMB 애플리케이션 개선도 변화된 모습 중 하나지만요, 무엇보다도 이기종 환경에 대한 관리와 최적화를 요구하는 기업들에게 “나는 알 바 아니다(not my problem)”라는 식의 태도가 싹 사라졌다고 합니다.

기업 시장에서 MS만큼 강력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벤더는 없습니다. 하지만 MS의 잠재력이 현실화되려면 윈도를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윈도가 어디에서나 사용되고 있고 강력한 제품임은 인정하지만, 현재 MS에게는 윈도밖에 없거든요. MS 윈도를 사용하고 싶지만 MS에 완전히 발목잡힐까봐 두려워하는 CIO들을 MS의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기업의 오픈소스 사용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MS 환경과 오픈소스 환경이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야 MS를 찾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군요.

아마 MS가 레드햇을 적대적 인수가 아니라 진정으로 통합하기 위해 인수한다면 그거야말로 IT역사에 한 획을 그을 일일 것입니다. 레드햇이 아니라 다른 오픈소스 업체여도 좋겠죠. MS가 변하고 있고 앞으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면요.

이전의 MS를 생각해보면 설마 싶지만 요즘 MS가 스마트폰(코드명 핑크)을 내놓으면서 ‘이제는 공유할 때(It`s time to share)`라는 미디어 초청장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 애플 아이폰 및 앱스토어에 대한 비난과, 자사 스마트폰 정보 공개 두 가지를 함축한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기업 IT운영 환경에서도 ‘이제는 공유할 때(It`s time to share)’라는 메시지를 보여준다면 MS는 아마 천하무적이 되지 않을까요?

박현선기자 h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