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 판결]③애매한 사실 '최태원의 TRS 관여'

서울고법 재판부 "SK 비서실, 2017년 5월경 한국투자증권과 TRS 논의" 'SK비서실 4월16일부터 TRS 논의' 사실 명시돼

2024-02-23     김현동 기자

[프레스나인] SK실트론 재판에서 '사업기회'만큼이나 주목을 모았던 것은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이 제공됐는지 여부다. 그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의 관여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의 관여 여부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의 판단 과정에 사실관계의 누락이 있다.

서울고등법원 제6-2행정부(재판장 위광하·홍성욱·황의동 판사)는 지난달 열린 해당 재판의 판결선고에서 "SK㈜의 비서실이나 임직원이 최태원의 잔여지분 취득에 관여한 것을 사업기회 제공으로 보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SK실트론 잔여지분 29%의 처분권한이 SK㈜에게 없어 '사업기회'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한 SK㈜가 잔여지분 29%에 대한 인수를 공개경쟁입찰 이전에 포기했다고 전제한 이후에, 특수관계인의 관여 여부를 살폈다. 이는 '사업기회의 제공'이 공정거래법 상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의 한 유형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최태원)이 지배주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회사(SK㈜)에 대해 지시 내지 관여를 했느냐가 쟁점이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SK㈜는 최태원 개인의 거래임에도 입찰 참여부터 최종 주식매매계약 체결까지 전 과정에 자신의 비서실, 재무, 법무담당 임직원이 해당 거래를 지원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SK㈜의 미래 거래 가치까지 한국투자증권에 제시해 최태원이 유리한 조건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TRS(Total Return Swap) 거래 구조와 관련해 SK㈜의 비서실이나 재무 부문 임직원들의 관여는 2017년 4월28일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최태원이 적격투자자로 선정된 이후인 2017년 5월경 SK㈜의 비서실이나 재무 부문 임직원이 한국투자증권과 논의했다"고 했다. 최태원의 잔여지분 낙찰 이후에서야 SK㈜ 비서실과 재무라인의 관여가 있었기에 부당이익 귀속 과정에 대한 지시나 관여가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SK 측이 제시한 사실관계 주장에 따르면, SK㈜ 비서실의 이OO과 오OO은 2017년 4월16일부터 한국투자증권과 접촉해 최태원이 TRS 거래방식으로 잔여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을 논의했다. 그 직후인 2017년 4월21일 최태원과 한국투자증권은 자문계약을 체결했다. 최태원의 적격투자자 선정 이전에 이미 SK㈜ 비서실 인사들이 한국투자증권과 접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SK㈜ 비서실이나 재무 부문 임직원의 관여가 이 사건 입찰에서 낙찰자가 최태원으로 결정된 사실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한국투자증권 내부보고서의 'SK그룹과의 향후 딜을 고려해 수수료율을 낮춰달라는 의견'은 SK㈜ 비서실이 지분 입찰 이전부터 거래에 깊이 관여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TRS 계약에서도 최태원 회장은 언제든지 매수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고, 임의매각금지권을 갖고 있다.​

고법 재판부가 최태원의 해당 거래에 대한 관여 여부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는 ▲SK 비서실 회계전문 인력 2명의 채용이 지분 입찰 이전인 2016년 7월경이라는 점 ▲TRS 거래구조 논의가 2017년 5월이라는 점 ▲잔여지분의 처분권한이 우리은행에 있다는 점 등이다. 첫번째 근거는 분명하나 두번째 근거는 사실관계에서 오류가 있다. 세번째 근거는 관여 문제라기보다는 사업기회에 대한 판단과 더 관련성이 높다.

최근 대법원은 특수관계인의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에 대한 관여와 관련해 상당히 포괄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태광그룹 관련 선고에서 "특수관계인이 해당 거래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과정에서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했다면 그 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2022두38113).

최태원 회장이 우리은행 보유 SK실트론 잔여지분 29%의 공개경쟁입찰에 개인자격으로 참여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SK의 입찰 불참 결정에 최태원 회장의 지시‧관여가 없었다고 보기에는 TRS 거래구조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