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Dive][킵스파마]④차세대 경구용 비만약 전쟁 판도 바꾸나

오랄로이드 기술의 핵심…‘나노 갑옷’과 생체 수송 경로 노보노·릴리·화이자와 다른 접근법…간 독성 회피 전략 등 안전성 차별화 가능성

2025-06-17     최원석 기자

[프레스나인] 100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은 주사제의 시대를 지나 경구용 치료제라는 패러다임 전환의 서막을 열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서 한국의 바이오 기업 킵스파마와 그 자회사 킵스바이오메드가 야심찬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의 무기는 새로운 신약 물질이 아닌, '오랄로이드(Oraloid)'라 불리는 혁신적인 약물 전달 플랫폼 기술이다. 

킵스파마의 전략은 약물 전달 분야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데서 시작한다. GLP-1과 같은 펩타이드 약물은 분자량이 크고 위산과 소화효소에 의해 쉽게 파괴돼 경구 투여 시 생체이용률이 극히 낮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지닌다. '오랄로이드'는 이 문제를 두 가지 독창적인 기전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펩타이드 미네랄화·약물보호 '나노 갑옷'…표적흡수 위한 열쇠 '자연경로 이용'

'오랄로이드' 플랫폼의 첫 번째 핵심은 '펩타이드 미네랄화(peptide mineralization)' 기술이다. 이는 GLP-1 펩타이드를 칼슘 기반의 미네랄 입자로 감싸는 방식이다. 

이 미네랄 층은 위와 상부 소장의 가혹한 환경으로부터 깨지기 쉬운 펩타이드 약물을 물리적으로 보호하는 '나노 갑옷'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히 화학적 흡수 촉진제를 사용하는 경쟁 기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이다.

두 번째 기전은 더욱 정교하다. '오랄로이드'는 인체의 담즙산 수송 시스템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미네랄화된 나노입자는 담즙산을 모방하도록 설계해 소장 말단 회장(ileum)에 존재하는 특정 수송체인 'ASBT(Apical Sodium-dependent Bile acid Transporter)'에 결합한다. 

ASBT는 이 나노입자를 담즙산으로 인식하고, 그 안에 담긴 GLP-1 약물과 함께 혈류로 능동적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단순한 수동적 확산이 아닌, 표적화된 능동 수송 메커니즘으로, 약물 전달 효율을 극대화하는 열쇠가 된다.

이러한 이중 공격 전략을 통해 '오랄로이드'는 여러 기술적 우위를 주장한다. 높은 생체이용률 잠재력 외에도, 상온에서 1년 이상 안정적으로 보관이 가능하다는 점은 유통 및 보관 비용 측면에서 상당한 이점을 제공한다. 

또한 GLP-1에 국한되지 않고 인슐린, 호르몬, 나아가 차세대 치료제로 주목받는 RNA까지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로서 확장성을 지닌다. 실제로 대웅제약과 골다공증 치료제 개발에 이 기술을 활용하는 협력을 진행 중인 것은 플랫폼의 다용도성을 입증하는 사례다.

이 기술의 과학적 특징은 자연을 모방하는 데 있다. 값싸고 풍부한 미네랄로 약물을 보호하고, 인체 본연의 생물학적 수송 시스템을 이용해 약물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세포 장벽을 열어 약물 흡수를 돕는 화학적 촉진제(노보노디스크의 SNAC)나 펩타이드 전달의 어려움을 원천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저분자 화합물을 설계하는(일라이릴리의 오르포글리프론) 경쟁사들과 궤를 달리한다. 

인체의 시스템과 조화롭게 작동하는 이 '생체 친화적' 접근법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우수한 안전성과 내약성 프로파일을 가질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는 강력한 과학적 서사이자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초기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서 펩타이드 전달로 전략을 수정한 배경도 주목할 만하다. 개발 경로가 길고 험난한 유전자 치료제 대신, 이미 검증된 GLP-1 계열 약물을 경구 제형으로 전환하는 것은 기술이전이나 시장 진입에 훨씬 유리한 전략적 선택이다.

◇글로벌 거인들과의 대결 구도…‘기술·안전성·제조’ 3각 차별화로 승부수

경구용 비만 치료제 시장은 단순한 개발 경쟁을 넘어, 각기 다른 과학적, 제조적 철학이 충돌하는 전쟁터다. 킵스파마는 이 거대한 전장에서 자사의 기술적 포지셔닝을 명확히 하고 있다.

시장의 선두주자인 노보노디스크는 SNAC 기술을 사용한다. 이는 화학적 흡수 촉진제를 이용해 일시적으로 장 세포 간의 결합을 느슨하게 만들어 펩타이드가 통과할 길을 열어주는 방식이다. 이미 리벨서스®를 통해 상업적으로 검증됐지만, 생체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위장관계 부작용이 흔하다는 한계가 있다. 

강력한 경쟁자인 일라이릴리는 펩타이드가 아닌 저분자 화합물 '오르포글리프론'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 전략은 펩타이드 전달의 난제를 원천적으로 회피하며, 성공 시 제조 원가와 편의성에서 막대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화이자는 다누글리프론과 로티글리프론이라는 두 개의 경구용 GLP-1 후보물질 개발을 간 효소 수치 상승 문제로 중단했다. 이는 대형 제약사에게도 안전한 경구용 GLP-1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모든 후발 주자에게 '간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허들이 됐음을 의미한다.

화이자의 실패는 킵스파마에게 '안전성 우선'이라는 전략적 기회를 열어준다. 화이자의 실패 사례는 저분자 화합물 기반 경구용 GLP-1 개발에 있어 간 독성이 중요한 위험 요소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킵스파마는 생물학적 제제인 펩타이드를 생체 친화적 전달 시스템으로 개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펩타이드는 저분자 화합물에 비해 특이적 간 독성 발생 빈도가 낮다. 만약 킵스파마가 영장류 및 초기 임상에서 깨끗한 간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한다면, '오랄로이드'를 단순히 효과적인 기술이 아닌 '더 안전한 기술'로 포지셔닝할 수 있다. 

또 다른 전쟁터는 바로 '제조'다. GLP-1 시장은 공급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오랄로이드'의 기반이 되는 칼슘은 풍부하고 저렴한 원료다. 이는 복잡한 화학적 촉진제나 새로운 저분자 화합물을 합성하는 것보다 제조 공정이 훨씬 단순하고 비용 효율적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수십억 회분의 투여량이 필요한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낮은 생산단가(COGS)와 안정적인 공급망은 잠재적 파트너에게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 될 것이다.

◇시험대 오른 혁신…영장류 데이터 관건

업계 관계자는 "킵스파마는 파괴적 잠재력을 지닌 기술을 손에 쥐고 있지만, 막강한 자본과 시장 지배력을 갖춘 거인들이 버티고 있어 국내외 경쟁은 날로 치열한 상황"이라며 "약물 개발에 내재된 본질적인 위험 역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게임 체인저로 거듭나는 여정은 과학 기술력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힘, 전략적 실행력, 눈앞의 허들을 넘어설 능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곧 발표될 영장류 비임상 데이터는 가장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킵스파마 오랄로이드 기술 모식도. 사진/킵스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