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B 동탄연구소]②한용해 CTO “‘포스트 리보세라닙’ 씨앗, R&D 집단지성의 힘”
‘비전문가 우려’는 옛말...결정은 회장, 판단은 전문가 몫 합리적 의사결정 기반 투자, “차별화한 한 방 있는 회사 인수” 계열사간 협업 활발, 암·파킨슨병·비만 공략 ‘따로 또 같이’
[프레스나인] “그룹 수장은 진양곤 회장님이지만 회장님이 모든 사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게 불가능한 체계입니다. 항상 전문가 의견을 다각도로 검토하죠. ‘보물을 놓칠 수 있어도 과정만큼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게 회장님 지론입니다.”
12일 HLB그룹 동탄연구소에서 만난 한용해 HLB그룹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그룹 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HLB그룹은 거대하면서도 민첩하다. 계열사를 수십 곳 거느리고 있으나 여전히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 등 신규 투자를 탐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이오 전문가가 아닌 진양곤 회장이 투자를 전단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내부의 실제 사정은 정반대다. 연구개발(R&D), 재무회계 등 각 분야를 담당하는 브레인들이 진 회장을 뒷받침하며 성장 동력 발굴에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도 투자는 계속된다.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rivoceranib)의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으나 특정 물질에만 의존하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HLB그룹은 이미 경쟁력 있는 바이오텍 및 신약 파이프라인을 다수 확보해, 하나씩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줄 계획이다. 특히 계열사간 협업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가시화하고 있다.
이하는 일문일답
Q. HLB그룹이 신규 투자나 물질 개발을 결정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A. 인수합병 기회가 생겼다고 했을 때 재무회계 측면에서 보기는 쉽다. 하지만 데이터나 파이프라인 등 내부는 부실한 경우가 많다. 실속 있는 기술인지를 판별하기 위해 CTO 중심으로 검토해 전문가 의견을 제시한다.
사업개발 측면에서는 그룹 바이오전략팀 쪽에서 인수나 협력 여부 등을 판단하고, 투자사인 HLB인베스트먼트에서는 투자 및 재무 관점에서 의견을 낸다. 보고할 때는 서로 모르게, 어느 한 팀에 휘둘리지 않게끔 독립적으로 보고한다.
회장님은 이런 보고를 다 받은 뒤 그룹 차원에서 필요성을 고려해 결정한다.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건 불가능한 체계다. 4~5년 전만 해도 재무회계적인 측면의 판단이 많았으나 이제 그룹 내 전문가가 많아져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회장님에게 쏟아지는 부담을 덜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Q. 전문가 의견이 반영된 중요한 의사결정의 예가 있다면.
A. HLB테라퓨틱스의 신경영양성 각막염(NK) 치료제 개발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앞서 회장님 결단. HLB테라퓨틱스는 HLB그룹 인수 전인 지트리비앤티 시절 안구건조증 치료제 임상에 실패했었다. 그런데 인수 후 들여다보니까 NK에 대해 매우 초기적인 임상 결과가 있었다. 임상 프로토콜을 변경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내부적인 의견이 나왔다.
회장님은 NK 치료제 개발에 대해 리스크가 크다고 봤다. 그때 미국 자회사 엘레바테라퓨틱스에 선임된 새 경영진 등 전문가들이 들어와 함께 의논했다. 전문가 의견을 두루두루 들은 결과 해볼 만 하겠다는 판단이 도출돼 NK로 방향을 전환했다.
현재 HLB테라퓨틱스는 NK 치료제 ‘RGN-259’의 임상 3상 톱라인 도출을 앞두고 있다. RGN-259는 경쟁 약물 대비 투여가 간편한 데다 가격 경쟁력도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기술수출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중이다.
Q.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HLB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알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너지가 창출되고 있나.
A. 먼저 HLB제약과 HLB셀의 협업이 있다. HLB제약은 히알루론산 필러 기술을, HLB셀은 인간 유래 세포외기질 ‘휴트리겔’을 갖고 있다. 세포외기질은 세포 성장 과정에서 윤활유, 접착제 역할을 한다. 휴트리겔과 히알루론산 필러를 합치며 필러에 피부재생 기능이 더해진다. 이를 ‘휴필러’라고 가칭을 붙이고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중이다.
HLB제약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HLB펩의 신규 GLP-1 펩타이드에 적용시킨다는 계획도 세웠다. 기존 GLP-1 제제 펩타이드는 인위적인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져 생체 내 효소 공격으로 깨지는 게 문제다. 반면 HLB펩의 펩타이드는 효소 공격으로 깨지기 쉬운 부분을 교체해 자연적인 아미노산으로 인식되게 함으로써 약효를 오래 발휘할 수 있다. 이를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또 새로운 기전의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HLB뉴로토브는 전임상 패키지를 꾸며야 하는데 이를 HLB바이오스텝에서 담당할 예정이다. 굉장히 값싸고 속도감 있는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항암제와 관련한 시너지도 기대된다. 리보세라닙을 국내, 아시아 시장에서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HLB제약이 생산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제조, 생산, 판매, 유통을 그룹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셈이다. 한편 최근 엘레바테라퓨틱스가 인수한 담관암 치료제 리라푸그라티닙(lirafugratinib)의 경우 타깃인 FGFR2 변이 진단을 위한 동반진단 제품을 HLB파나진이 만들면 글로벌에서도 통할 것이다.
Q. 전임상 단계인 후보물질 중 특히 주목할 만하거나 개발 진척이 빠른 물질은.
A. HLB뉴로토브의 근긴장이상증 치료제가 곧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해당 약물은 예전에 사노피가 수면제로 임상 3상까지 진행하다가 약효 부족으로 포기했던 성분이다. 김대수 HLB뉴로토브 대표가 근긴장이상에 효과 있는 물질들을 스크리닝하다 발굴했는데 이미 임상이 진행됐던 만큼 부작용이나 독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근긴장이상증 임상에 필요한 데이터를 별도로 마련해 임상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HLB펩의 GLP-1/글루카곤 이중작용제는 원숭이 독성시험을 진행 중이다. 혈당을 낮추면서 에너지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를 겸비했다. 한 제약사에서는 이중항체로 GLP-1/글루카곤 이중작용제를 연구하고 있는데 HLB펩은 훨씬 값싼 펩타이드로 개발하고 있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Q. 실패 위험 높은 신약개발에 계속 투자하는 이유는.
A. 실패해도 사과나무를 계속 심어야 한다. 여러 바이오텍이 포진한 ‘레드오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회장님도 남이 하는 것 대신 한발 더 내다보고 앞서갈 수 있는 성장 동력을 발굴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래서 HLB뉴로토브나 HLB펩, HLB제넥스처럼 확실한 기술력으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회사, 차별화한 한 방을 갖고 있는 회사를 인수하려고 한다. 차별성 없는 것은 검토 과정에서 잘라버린다. 틈새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을 찾겠다.
이런 기조에 따라 우리는 여러 씨앗을 뿌려놨다. 시장에서 리보세라닙만 너무 주목하지만 뿌려놓은 씨앗들도 차례대로 크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