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규제개선 2년' 개인유전자검사 시장, 왜 못 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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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규제개선 2년' 개인유전자검사 시장, 왜 못 크나
  •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 기자
  • 승인 2018.07.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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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의뢰 없이 민간 유전자검사업체에서 유전자 검사가 가능해진 지 2년이 지났다. 건강관리와 질병 예측·예방에 유전자 검사가 활발히 활용되면서 정밀의료 구현에 한걸음 다가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유전자 검사를 기반으로 한 건강관리 서비스, 건강기능식품 등 연관 산업 육성도 기대됐다.

법적으로 개인의뢰유전자분석(DCT)이 가능해졌지만 시장은 형성조차 못했다. 법 개정에 맞춰 장비, 인력을 늘리고 자회사 설립 등 투자에 나섰던 기업은 월평균 매출이 300만원에 그친다. 시장 수요가 집중된 질병 예측·예방 분야가 아닌 피부, 미용, 체중 관리 등만 허용해 수요가 미치지 못했다.

유전자 검사의 신뢰 의문, 오·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검사항목 확대를 반대했던 의료계가 한발 물러섰다. 정부 중재로 의료계-유전자검사 업계 간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검사허용 항목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항목 수, 검증 방법, 모니터링 등을 놓고 또 다시 갈등이 불거진다.

◇DTC 허용, 첫 단추부터 삐걱

보건복지부는 2015년 12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민간업체가 의료기관 의뢰 없이도 자체적으로 검사를 가능하도록 했다. 2016년 6월 30일부로 시행된 DTC는 혈당, 혈압, 피부노화, 체질량지수 등 12개 검사항목, 46개 유전자가 대상이다. 검사항목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검사해 '콜레스테롤 농도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혹은 '색소침착이 일어날 가능성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몇 배 높다' 등 예측성 검사 결과를 확인한다.

당시 업계는 수요가 많은 질병 영역이 아니라 생활습관 개선, 피부·미용 등 일부 영역에 국한해 실효성이 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하지만 정부가 점진적 확대를 약속하면서 기대감을 가지고 사업을 준비했다.

2년이 지났지만 업계 실적은 초라하다. 한국바이오협회 유전체기업협의회 조사 결과 지난해 말까지 누적기준 DTC 수행 건수는 약 964건으로 나타났다. 기업당 월평균 45건, 매출은 320만원 수준이다. 법 개정 후 현재까지 기업별 총 매출이 1억원도 채 안 되는 실정이다. 서비스 개발, 인력과 장비 추가 확보, 별도 자회사·합작사 설립 등 적지 않은 투자를 한 상황에서 회수는커녕 적자만 늘어난다.

유전체 분석기업 관계자는 “2010년대부터 주장해 온 DTC를 2016년 6월부터 일부 허용했지만, 투자 대비 수익을 거둔 기업은 한 군데도 없다”면서 “허용항목이 제한적이어도 시작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문제제기를 크게 하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정부의 점진적 규제 개선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규제다. 검사 허용항목이 제한적인데다 소비자 수요와 일치하지 않는다. 현행법은 검사 항목은 물론 분석 유전자까지 한정한다. 가령 '피부노화' 중에서도 분석 유전자는 'AGER'로 제한한다. 제한적 유전자 지정으로 결과 신뢰성과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소비자는 유전자 검사로 알고 싶은 정보가 암, 치매, 비염 등에 집중된다. 하지만 허용 항목이 질병과 연관성이 떨어지다 보니 지불의사가 적다. 규제는 풀었지만 정작 보건·산업적 의미는 미미하다.

◇한발 물러선 의료계, '웰니스' 영역까지 확대 예상

정부가 애초에 제한적으로 규제를 푼 것은 의료계 반대가 완강했기 때문이다. 진단검사의학과 등 유전자 검사를 맡아왔던 의료계는 DTC가 질병진단, 예측, 예방 영역까지 허용되면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유전자 검사와 연관성 규명을 더 필요한데다 민간이 주도할 경우 오남용 우려도 있다는 이유다.

한 대학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DTC도 일종의 의료행위로 볼 수 있는데, 질병과 연관성이 높은 영역까지 민간에 허용한다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질병과 연관성이 적은 영역부터 효과, 부작용 검증 등을 좀 더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개선 실익이 없다는 업계와 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료계 간 주장이 평행선을 이루면서 정부 중재가 진행됐다. 작년 11월 의료, 산업, 법조계가 참여하는 DTC 협의체를 구성했다. 약 4개월간 논의 끝에 의료계가 한 발 물러서 '웰니스' 영역까지 민간 유전자 검사를 허용하도록 합의했다. 기존 허용항목에 더해 음주, 수면, 스트레스, 탈모, 운동, 흡연 등 건강과 관련된 항목까지 포함된다. 허용 유전자 역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 유전자를 한정하지 않고 검사 항목만 제시한다. 최대 157개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산업계는 진단, 치료, 재활 등 질병과 연관된 영역은 아니지만, 웰니스 항목까지 확대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질병 진단, 치료 전 단계인 웰니스 영역까지 DTC를 허용해도 관련 시장이 상당하다. 검사항목을 늘리되 유전자를 한정하지 않은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적용한 것도 환영한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산업계가 가장 현실적인 협상 수준인 웰니스 영역 허용을 제안했는데, 의료계가 전향적으로 수용했다”면서 “산업계 요구사항이 완벽하게 수용되지는 못했지만, 점진적으로 신뢰를 쌓고 소비자 요구사항을 전달한다면 더 나은 결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TC 개정안 마련 중, 갈등 불씨는 남아

정부는 의료-산업계가 합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DTC 고시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4월 공청회로 내·외부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쳤다.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하반기 개정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한다.

의료-산업계 합의를 거쳤지만 갈등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의료계는 산업계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대신 부작용 방지를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DTC-GT 검사실 인증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유전자 검사성능, 정확도, 품질관리체계 등 인증기준을 마련해 부합하는 기업만 확대된 DTC 항목을 수행토록 한다.

업계는 인증제 시행에 따라 인증 기준, 방법 등을 결정하는 데만 1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증기관 역시 의료계 주도로 진행될 경우 시장 진입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의료계는 DTC 허용 확대로 무분별한 기업, 서비스 난립을 제어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반박한다.

유전체 분석 업계 관계자는 “무분별한 시장 진입을 제어하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기존에 차세대염기서열(NGS) 검사실 인증 등 유사한 검증방법이 있는데 별도 인증제를 또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중국 등 후발주자가 무섭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인증제 마련으로 2년 가까이 시간이 소요될 경우 글로벌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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