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나인] 방사성의약품(RPT)이 최근 제약바이오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RPT는 암세포를 추적하는 ‘바인더’와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한 약물이다. 정상 세포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암세포를 사멸시킨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RPT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양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확보하는 일이다. 생산과 취급 자체가 까다로운 원료다 보니 공급자가 많지 않다. 특히 RPT는 신생 시장인 만큼 개발 단계에서부터 원활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일이 바이오텍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RPT를 개발하는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방사성 동위원소 공급망을 구축 또는 확대하기 위한 투자에 한창이다.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로 대박을 터뜨린 노바티스가 적극적이다. 노바티스는 플로빅토 등 RPT 생산을 위해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에 각각 신규 생산시설을 건설하기로 했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시설이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을 맡는 것으로 파악된다. 

눈에 띄는 부분은 각 시설이 향후 보다 다양한 동위원소 및 치료제의 생산에 대비해 여유 부지를 둔다는 점이다. 차세대 동위원소 확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플루빅토에는 루테륨(Lu- 177)이 쓰이는데 최근 RPT 개발사들은 루테륨보다는 악티늄(AC-225)에 주목하고 있다. 악티늄이 반감기가 더 길면서도 암세포 살상력이 높아서다. 실제로 노바티스도 플루빅토 상용화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 5월 악티늄 기반 RPT 개발사 마리아나(Mariana Oncology)를 인수했다.

일라이릴리의 행보도 노바티스와 비슷하다. 지난해 10월 악티늄 기반 RPT 개발사 포인트바이오파마(Point Biopharma)를 사들였고 올해 8월 악티늄 등 방사성 동위원소 제조업체 이오네틱스(Ionetix) 전환사채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인트바이오파마와 이오네틱스가 맺은 기존 계약을 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SK바이오팜의 경우 SK그룹 차원의 투자를 계기로 초기 공급망을 확보했다. 앞서 2022년 SK그룹은 미국 소형모듈원전(SMR)업체 테라파워에 약 3000억원을 투자했다. SK바이오팜은 이를 통해 아시아 4개국에 대한 악티늄 독점 공급권을 가져왔고 올해 8월 본격적인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테라파워는 미국 에너지부와 협력해 악티늄 생산에 필요한 원료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역량을 기반으로 SK바이오팜 이외에도 액티스(Aktis Oncology), 카디널헬스(Cardinal Health), 포인트바이오파마 등 여러 업체에 동위원소를 공급하는 중이다.

다만 RPT 개발 후 상용화 수순을 고려하면 테라파워에 더해 추가 공급업체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게 SK바이오팜의 설명이다. SK바이오팜은 고형암 치료 후보물질 SKL35501을 2034년까지 상용화한다는 목표인데 테라파워와 계약으로 임상 1~2상에 필요한 동위원소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신규 공급업체를 모색하는 중이다.

제약바이오업계의 동위원소 확보 시도와 맞물려 공급업체의 저변도 확대되고 있다. 시장 장래성을 눈여겨본 신규 기업들의 등장이 주목된다. 

벨기에 판테라(Pantera)가 대표적이다. 판테라는 입자가속기 전문기업 IBA(Ion Beam Applications SA)와 벨기에 원자력 연구센터 SCK CEN의 합작으로 2022년 설립됐다. 테라파워와 제휴로 올해부터 악티늄 생산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바이엘(Bayer) 등과 악티늄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독일 방사성의약품 개발사 ITM(Isotope Technologies Munich SE)과 캐나다 원자력 연구소(Canadian Nuclear Laboratories)의 합작으로 방사성 동위원소 제조업체 액티니어(Actineer)가 출범하기도 했다. 상업적 규모의 악티늄 생산능력을 갖추고 장차 글로벌 공급에 나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