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212, 악티늄-225보다 약하지만 안전...“부작용 가능성 제한적”
사노피 파트너 오라노메드, 납-212 확보 자신...자체 공급망 완비
[프레스나인] 방사성의약품(RPT) 개발이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의 새로운 트레드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빅파마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노바티스, 아스트라제네카, BMS, 일라이릴리 등이 막대한 자금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RPT 확보에 나섰다.
프랑스 사노피도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앞서 9월 RPT 개발사 오라노메드(Orano Med), 미국 라디오메딕스(RadioMedix)와 3억2000만유로(약 4800억원) 규모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RPT 후보물질 ‘알파메딕스(AlphaMedix)’의 글로벌 상업화 권리를 가져왔다. 여기에 더해 17일에는 오라노메드와 손잡고 차세대 RPT 개발을 담당할 신규 법인을 세워 3억유로(약 4500억원)의 자금을 댄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사노피의 적극적인 투자 기조 자체는 여타 빅파마와 비슷하지만 선택한 ‘무기’는 다르다. 방사성의약품의 핵심인 동위원소로 요즘 각광받는 악티늄-225(225Ac)가 아닌 납-212(212Pb)를 택한 것이다. 사노피와 협업하는 오라노메드는 납-212를 활용한 RPT를 주로 개발하는 중이다.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알파메딕스 역시 납-212가 탑재된 약물이다.
상술한 빅파마들의 최근 M&A가 주로 악티늄에 초점을 맞춘 것과 대조되는 행보다. 노바티스가 인수한 마리아나온콜로지(Mariana Oncology), 아스트라제네카가 인수한 퓨전파마슈티컬스(Fusion Pharmaceuticals), BMS가 인수한 레이즈바이오(RayzeBio), 일라이릴 리가 인수한 포인트바이오파마(POINT Biopharma) 모두 악티늄 기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동위원소는 RPT의 핵심이다. RPT는 ▲동위원소 ▲특정 세포를 추적하는 표적 물질 ‘바인더’ ▲동위원소와 바인더를 연결하는 ‘링커’ 등 3가지로 구성된다. 바인더가 체내 암세포를 찾으면 동위원소가 내뿜는 방사선이 암세포의 DNA를 손상시켜 항암 효과를 발휘하는 원리다.
앞서 노바티스가 상용화한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루타테라 등의 RPT에는 루테튬-177(177Lu)이 쓰였으나 최근에는 악티늄-225가 주목받는 분위기다. 악티늄-225가 루테튬-177보다 암세포 살상력이 더 뛰어나고 반감기(방사선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간)도 길어 유통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사노피가 선택한 납-212의 특징은 어떨까. 악티늄-225가 알파입자(알파선) 4개를 방출하는 데 비해 납-212는 하나만을 방출한다. 암세포 살상력에서 악티늄-225가 우세하다는 얘기다. 또 반감기를 보면 악티늄-225는 약 10일, 납-212는 약 10시간으로 납-212 쪽이 훨씬 짧다. 치료제를 생산한 후 환자에게 전달하기까지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
언뜻 납-212가 RPT 개발에 훨씬 불리해 보인다. 하지만 사노피는 이런 특징들이 오히려 항암제로서의 안전성 측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오라노메드 최고의료책임자(CMO)인 볼커 와그너(Volker Wagner) 박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방출하는 알파선이 많을수록 암에 더 강력하지만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고려하면 그런 방출 중 많은 수가 암이 아닌 다른 부위에서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off-target tox)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납-212는 알파선을 한 번 방출해 부작용 가능성이 더 제한적이다”고 덧붙였다.
동위원소 자체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관한 고민도 사노피가 납-212를 고른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된다. 악티늄-225는 토륨-229(229Th)가 붕괴하면서 생성되며 토륨-229는 우라늄-233(233U)으로부터 나온다. 문제는 우라늄-233의 생산을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가 필요해 취급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오크리지국립연구소(ORNL)에 따르면 우라늄-233은 앞서 미국에서 1950~1960년대 핵연료로 활용하기 위해 생산됐으나 이후 활용 불가능한 연료원(unviable fuel source)으로 밝혀져 처치 곤란한 재고로 남은 상태다. 현재 악티늄-225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미국 테라파워(TerraPower)의 경우 우라늄-233 재고 처리를 원하는 DOE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테라파워 파트너사 아이소텍(Isotek)이 ORNL로부터 우라늄-233을 넘겨받아 토륨-229를 추출하고, 테라파워가 이 토륨-229로 악티늄-225를 생산하는 식이다.

다만 ORNL이 보유한 우라늄-233이 모두 소진되면 토륨-229, 악티늄-225의 생산도 불투명해진다. 아이소텍의 사라 쉐퍼(Sarah Schaefer) 사장은 “세계 우라늄-233 재고 대부분은 ORNL에 저장돼 있으며 이 물질이 처분되면 더 이상 토륨-229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나마 생산되는 악티늄-225도 당장 수량이 충분치 않다. BMS가 인수한 레이즈바이오는 악티늄-225 기반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RYZ101’의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올해 6월 악티늄-225가 부족해져 환자 등록을 일시 중단했다. 앞으로 악티늄-225를 요구하는 제약바이오기업이 늘어나면 또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우라늄-233 없이 악티늄-225를 생산하는 기술도 지속 개발되고 있으나 의미 있는 규모에 이르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악티늄-225와 달리 납-212의 경우 원료 소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오라노메드의 설명이다. 오라노메드가 속한 오라노그룹은 세계적인 종합 원자력 기업으로, 납-212의 원료인 토륨-232(232Th)를 대량 보유하고 있다. 또 토륨-232에서 납-212를 여러 번 추출할 수 있기도 하다.
볼커 와그너 박사는 “우리는 납-212를 유도하는 엄청난 양의 모체 동위원소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며 “이는 다른 곳에서 페이로드(동위원소)를 받아야 하는 업체들과 오라노메드를 차별화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라노메드는 납-212의 짧은 반감기를 극복하고 환자에게 약물을 전달하기 위한 공급망도 구성하고 있다. 먼저 프랑스에서 토륨-232와 납-212의 중간 단계 동위원소인 라듐-228(228Ra), 토륨-228(228Th)을 생산하고 이를 병원 인근의 시설로 전달해 납-212 기반 RPT를 제조, 환자에게 최단시간 내 투여하는 방식이다. 납-212를 추출하는 데 원자로나 입자가속기 같은 대규모 시설이 필요하지 않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오라노메드는 올해 6월 미국 인디애나주에 처음으로 산업적 규모의 납-212 기반 RPT 제조시설을 준공했다. 내년부터는 유럽에서도 RPT 양산 및 유통을 시작해 장차 전 세계의 수요를 충족한다는 계획이다. 알파메딕스 등 RPT의 허가가 이뤄지면 곧바로 글로벌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라노메드 파이프라인 가운데 가장 개발이 빠른 알파메딕스는 현재 루타테라 치료를 받은 적 없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이 진행중이다. 앞서 임상 1상에서는 안전성이 확인되는 한편 62.5%에 이르는 객관적반응률(ORR)이 나타났다. 사노피로서는 오라노메드와 협업을 통해 경쟁력 있는 파이프라인과 안정적인 RPT 공급망을 동시에 손에 넣는 셈이다.
한편 오라노그룹 측에서도 사노피의 투자가 반가울 것으로 여겨진다. 오라노메드의 RPT 개발은 유망한 성장 동력이지만 아직 재무적인 효과가 뚜렷하진 않다. 오라노메드가 포함된 오라노그룹 사업부(Corporate)는 올해 상반기 매출 700만유로, 영업손실 2400만유로를 냈다. 오라노그룹은 광산업 부진의 영향으로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 2억6000만유로에서 올해 1200만유로로 급감한 상황이라 신약개발 부담을 경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