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나인 연중기획] 2020년 잘 노는 사람들② 지역사회, 모산아트센터 홍승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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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나인 연중기획] 2020년 잘 노는 사람들② 지역사회, 모산아트센터 홍승표 화백
  • 임준 기자
  • 승인 2020.01.13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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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놀고 성공하는 사람들과의 유쾌한 만남
홍승표 화백, 포천시의 새로운 문화예술 허브를 꿈꾸다

[프레스나인] 임준 기자=2020년, 사람들은 새로운 사업을 꿈꾼다. 다소 거창한 계획은 희망도 주지만 기대가 커져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된다. 몸이 굳어지고, 계획은 틀어진다.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본인이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면 어떨까? 노는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한다. 2020년, 정말 잘 노는 사람들 50인을 취재한다. 그 두 번째 순서로 경기도 포천시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허브를 만들고 있는 모산아트센터 홍승표 화백을 만나보았다.  

모산 홍승표 화백
모산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의 놀이터, 모산아트센터를 가다

고모리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 인근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울에서 30~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이곳. 이 일대는 수목원을 중심으로 숲과 산과 저수지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맛집들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밀집되어 있다. 최근 서울을 벗어난 경기 일원이 교통 편리로 인해 아파트나 상업지구로 개발이 되어서 번잡한 것에 비하면, 고모리는 전원의 수려함을 지키고 있는 마을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와서 힐링하기 좋은 곳이었다.

“경기도에서도 이곳 일대를 문화예술 마을로 인정해서 예산이 나와요. 인근에 둘레길도 조성하고, 분수대로 세우고, 지속적으로 조경 사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문화 예술 쪽에 종사하는 분들이 너무 좋아하는 곳이에요. 작가들이 작업하기도 좋은 환경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죠. 하지만 1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뭐랄까 먹고 놀기에 좋은 곳이랄까? 그것이 항상 아쉬웠어요. 그래서 아트센터를 만들 생각을 했어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저수지 전경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저수지 전경 (사진=임준 기자)

모산 홍승표 화백은 고모리에 대한 애정을 한껏 표현했다. 올해 오십대 중반의 서예가이자 서양화가인 홍 화백은 한국 화단에서도 그 독특함과 필력으로 인정받는 유명 중견 예술가다. 그가 서울에서 활동하다 어머니가 계시는 이곳 고모리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는 이곳이 단순히 먹고 마시고,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예술쪽으로 부흥되어 예술가들이 놀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곳이고 고향이죠. 지역 예술가들이 향유할 수 있는 시설들이 10년 전에는 없었어요. 지금이야 포천시내에 아트홀이 생기고 해서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예술인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 없었죠.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상가 건물을 지어서 수익 사업을 내라고 권유 했지만, 전 집을 팔고, 은행 대출을 받고, 형제들에게도 도움을 받아서 아트센터를 만들 결심을 했어요.”

모산아트센터 전경
모산아트센터 전경 (사진=임준 기자)

 

모산아트센터 입구와 모산 홍승표 화백
모산아트센터 입구와 모산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그렇게 홍승표 화백은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모산아트센터를 만들었다. 지하1층, 지상 4층의 커다란 문화예술 공간이 포천에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이름은 홍 화백의 호인 ‘모산’을 붙여 모산아트센터로 지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화가들과 사진작가 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2층은 작업실, 3층은 문화예술인을 위한 스테이공간, 4층은 공연, 행사,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트홀로 구성되어 있다.

“포천 일대의 문화 예술인들을 끌어 모았죠. 와서 전시도 하고, 공연이나 행사도 자유롭게 하고, 제대로 놀기를 바랐습니다. 당시에 서울까지 가서 전시나 공연을 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저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런 공간으로서 모산아트센터가 거점이 되기를 희망했고, 지난 10년간 열심히 잘 놀면서 지내온 것 같습니다.”

 

모산 홍승표 화백
모산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모산아트센터는 포천의 명소가 되었다. 문화예술 행사를 비롯해서 포천 내 중요 행사가 열린 소중한 공간이었다. 특히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은 홍 화백은 작품 활동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강습을 위해 유명 예술가를 초대해 강연이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고모리 지역사 편찬이나 장기 발전 계획에 대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센터 뒤에 고모리저수지가 생기고 변화가 많았죠. 처음 부모님이 이곳에 정착할 때 살기 시작한 곳도 그 수몰된 저수지 마을이었어요. 저수지가 생긴 이후 이쪽으로 이사 오면서도 저수지는 외부 사람들에게 명소가 되었습니다. 관련해서 주변에 좋은 음식점과 카페들도 많이 생겼고요.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요. 마을 주민들과 인근 예술가들이 참여해서 주민들은 물론이고, 외부 방문객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생태문화마을을 만들 계획입니다.”

매년 모산아트센터 주변에서 열리는 '수목원 가는 길' 문화제
매년 모산아트센터 주변에서 열리는 '수목원 가는 길' 예술제 (사진=임준 기자)

 

모산아트센터 4층 아트홀에서 열린 고모리 지역 발전 행사  (사진제공=홍승표 화백)
모산아트센터 4층 아트홀에서 열린 고모리 지역 발전 행사 (사진제공=홍승표 화백)
모산아트센터 4층 아트홀에서 열린 지역 주민 대상 예술 프로그램 (사진제공=홍승표 화백)
모산아트센터 4층 아트홀에서 열린 지역 주민 대상 예술 프로그램 (사진제공=홍승표 화백)

단순히 생각으로 그칠 수도 있는 이러한 것들이 지속사업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홍 화백이 보여준 두꺼운 두 개의 책자에도 이러한 홍 화백과 고모리 주민들의 실천 의지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홍 화백 스스로도 이야기했듯이, 한 번 무언가에 관심을 두게 되면 무섭게 집중하게 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고모리 지역사를 정리한 책자
고모리 지역사를 정리한 책자 (사진=임준 기자)

 

고모리 미래 마을 사업을 정리한 책자
고모리 미래 마을 사업을 정리한 책자 (사진=임준 기자)

욕쟁이할머니의 마음과 정신을 가슴에 새기다

홍 화백은 1968년으로 기억했다. 그 해 부모님이 리어카에 짐을 싣고 소요산을 떠나 밤새 어디론가 정처 없이 가고 있었다고 한다. 날이 밝으면 도착하는 그곳이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 하나만 가지고 밤새 홍 화백의 가족은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고모리다.

“정말 남모르는 곳에 와서 문간방에 얹혀살며 어머니께서 남의 일 해주면서 겨우 밥을 먹고 살았어요. 그때부터 어머님은 가족을 위해서 정말 억척스럽게 사셨습니다. 저희 형제들 키우고 살면서도 참 자식들을 사랑하는 분이셨죠. 세상 부모님들이 다 그러시겠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대단한 분이셨어요.”

 

욕쟁이할머니집 식당 입구와 홍승표 화백
욕쟁이할머니집 식당 입구와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홍 화백의 어머니 정의만 여사는 포천 고모리 욕쟁이할머니집 식당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정 여사는 2017년 12월에 소천 하셨다고 한다. 정 여사가 운영했던 욕쟁이할머니집은 특별한 음식이라기보다는 시래기 정식 등 시골집에서 먹을 수 있는 소박한 백반 집이었다. 청국장 백반을 먹었는데, 반찬이 10가지나 나왔다.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는 음식이라 자극이 확실히 덜했고, 밥을 먹고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아 좋았다. 특히 흰 콩비지가 무척 고소했다.

“어머님이 욕쟁이할머니로 알려졌지만, 정말 정이 많고 푸근한 분이셨어요. 퍼주시기를 좋아했고, 손해가 나더라도 손님들이 맛있고 배부르게 드시는 것을 원칙으로 아셨죠. 장을 깨끗이 하는 시래기는 철원 지역 커다란 밭에서 재배한 청정 시래기를 씁니다. 된장이나, 두부도 직접 만들죠.”

 

 

욕쟁이할머니집 시래기 정식
욕쟁이할머니집 시래기 정식 (사진=임준 기자)

 

욕쟁이할머니집 식당에 걸려 있는 정의만 여사의 인심
욕쟁이할머니집 식당에 걸려 있는 정의만 여사의 인심 (사진=임준 기자)

 

어머님이 연로해지시면서 투병생활을 하실 때, 옆에서 홍 화백이 식당을 맡으면서도 어머니를 10년 가까이 보살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리보전하고 침대에 누워 계실 때, 홍 화백은 무료하게 보내시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연필을 쥐어드렸다고 한다. 그 이후에 어머니는 연필로 벽에다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이라고 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림이 달리 보였다고 한다.

“그 다음에 어머니와 대화를 시작했어요. 예전에 살았던 곳을 회상하며, 좀 더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시라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도화지를 100장 사와서 드렸어요. 그때부터 어머니의 상상력이 폭발해서 하루에도 수십 장씩 그림을 그리시더라고요. 그 이후에 저화 계속 대화하며 예전 추억들을 하나하나 어머니가 도화지에 그리시더라고요. 그런데 작품을 완성하다 보니까 어머니만의 세계관과 선이 살아있다고 생각했어요. 대자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인 평론가들도 와서 어머니의 작품을 보고 놀라더라고요.”

 

 

모산아트센터 1층에 전시된 전의만 여사의 그림들
모산아트센터 1층에 전시된 정의만 여사의 그림들 (사진=임준 기자)

 

정의만 여사의 작품 '소요산 천막속의 가족들'
정의만 여사의 작품 '소요산 천막속의 한가족' (사진=임준 기자)

 

모산아트센터 1층에는 홍 화백 어머니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홍 화백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그런 어머니의 예술 세계를 느끼고 용기를 얻고, 배운다고 말한다.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주고, 교육시키고, 세상으로 내보내준 어머니의 모든 고생과 수고도 존경스러운 일이지만, 자식이 대처에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홍 화백에게 예술적인 가르침까지 전해준 것이었다. 부모란 자식에게 남김없이 다 주고 떠나는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욕쟁이할머니집 마당에 주저앉은 홍화백의 모습이 외로워보였다.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정을 나누었던 어머니가 그리웠던 이유일까?

 

생전의 정의만 여사
생전의 정의만 여사 (사진=임준 기자)
욕쟁이할머니집 식당 마당에 앉아 있는 모산 홍승표 화백
욕쟁이할머니집 식당 마당에 앉아 있는 모산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모산아트센터, 새로운 문화예술의 거점을 꿈꾼다

모산 홍승표 화백은 오랜 시간동안 서예를 해왔다. 전통적인 서예의 작업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던 중, 서양미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홍 화백의 글씨와 그림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넘어서 홍 화백만의 예술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에 홍 화백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미국 뉴욕 유명 갤러리 오픈 작가로 초대되기도 했다.

“몇 십 년을 서예를 하면서 매번 답습, 복습, 대가들의 작품을 따라하는 방식에 젖어 있었어요. 그런데 서양미술을 공부하게 되면서 새로운 조형을 깨닫게 되었고, 새로운 여백을 볼 줄 알게 되었고,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구도나 철학 등을 다시 깨닫게 되더라고요. 동서양이 접목된 콜라주 형식의 작품을 많이 하게 되면서 국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들을 받게 되었어요.”

 

모산 홍승표 화백의 사찰 현판 글씨
모산 홍승표 화백의 사찰 현판 글씨 (사진=임준 기자)

홍 화백은 국내외 주요 사찰 80여 이상의 현판을 썼다. 성철 스님의 겁외사를 비롯해 국립 수목원 현판 등에 그의 작품이 걸려있다. 홍 화백은 작품을 할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탈진이 되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한다고 한다. 그는 서예와 서양미술을 접목한 이 작업들이 창작의 샘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에게는 그 과정을 풀어가는 것에 많은 것을 걸고 있다.

“저는 곰 같은 사람이에요. 저는 목표나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제가 방향을 정하면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입니다. 그런 면에도 영악하지 않아요. 거침없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요. 큰 글씨도 많이 쓰면서 전 현대미술로 와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다른 작가하고 제 자신이 다르다고 느꼈죠. 원천무기인 서예를 바탕으로 서양미술을 더 확장해서 나갈 거에요. 거기에 한국적인 색깔도 내야하기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작업실에서 작업중인 모산 홍승표 화백
작업실에서 작업중인 모산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홍승표 화백의 글씨
홍승표 화백의 글씨 (사진=임준 기자)

 

작업중인 모산 홍승표 화백
작업중인 모산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홍 화백은 개인의 예술세계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의 예술인들과 교류하고, 지원하고,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전시관과 아트홀을 가능하다면 최대한 오픈해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한다. 마치 운명처럼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홍 화백은 술회한다. 또한 홍 화백은 포천과 고모리라는 지역을 새롭게 조명할 영화사를 얼마 전에 만들었다.

“영화사 이름은 모산픽쳐스입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다큐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을 제가 다시 연출해서 장편 다큐멘터리로 촬영하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올 해 12월에 어머니 3년상인데 그때 영전에 바치고 싶습니다. 이 이후에는 고모리와 포천을 중심으로 지역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습니다. 상업영화의 화려한 대규모 상업 영화가 아니라, 저예산 독립영화의 정신으로 순수한 인간애가 가득한 영화들을 제작하고 싶습니다.”

 

모산 홍승표 화백
모산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모산 홍승표 화백
모산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그 이외에도 고모리나 포천이 발전할 수 있는 영상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홍 화백 본인이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몸을 던져 새로운 세계를 열었던 것처럼, 모산픽쳐스를 통해 보여줄 세상도 아무도 몰랐던 세계를 깜짝 놀랄 방식으로 만들어 내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모산아트센터 옥상으로 올라가 인근 지대를 촬영했다. 자연광이 딱 좋은 시간이었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모두 다 서울이나 대도시로 달려갈 때, 다시 돌아와 자신이 자란 터전을 다시 세우고 그 안에서 같이 놀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홍 화백 같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고모리 마을 전경
고모리 마을 전경 (사진=임준 기자)
고모리 마을 전경
고모리 마을 전경 (사진=임준 기자)
생전의 정의만 여사와 홍승표 화백
생전의 정의만 여사와 홍승표 화백 (사진=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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