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 판결] ①'사업기회 제공' 두번째 사례…소극적 판단·'관여' 불인정
상태바
[SK실트론 판결] ①'사업기회 제공' 두번째 사례…소극적 판단·'관여' 불인정
  • 김현동 기자
  • 승인 2024.02.08 0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고등법원, SK실트론 행정소송서 SK·최태원 승소 선고
"사업기회 제공, 엄격 해석·확장해석 안돼"
SK실트론 경영권없는 소수지분, SK의 '사업기회' 미인정
최태원 회장의 거래관여 모두 불수용

[프레스나인] SK실트론 잔여지분 인수를 둘러싼 행정소송에서 SK와 최태원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승리했다. 이번 소송은 공정거래법 상의 사업기회 제공금지 조항에 대한 두 번째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소극적 방식의 사업기회 제공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서울고등법원 제6-2행정부(재판장 위광하·홍성욱·황의동 판사)는 지난 1월24일 SK와 최태원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의 판결에서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를 모두 인용한다'고 선고했다.

재판의 쟁점은 SK의 SK실트론 잔여지분 인수포기가 공정거래법 상의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에 해당하느나였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 제공 중 사업기회 제공 행위가 문제였다.

SK는 2017년 4월11일 진행된 우리은행의 옛 LG실트론(현 SK실트론) 지분 29.4% 공개경쟁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SK는 같은 해 1월 LG로부터 LG실트론 지분 51%를 약 62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렇지만 나머지 지분(우리은행 29.4%, KTB 19.6%)은 KTB 보유 지분만 매입했다. 경영권이 없는 잔여지분 29.4%는 같은 해 최태원 회장에게 낙찰됐다.

공정위는 SK의 SK실트론 잔여지분 29.4% 인수 포기가, 최태원 회장에게 간접적으로 사업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판단했다. '사업기회(business opportunity)'란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는 회사를 통해 수행할 경우 상당한 이익이 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상법은 회사의 이사에 한정해서 '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 귀속금지의 한 유형으로 사업기회 제공을 두고 있다.

공정거래법 상 '사업기회 제공'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은 지난해 내려졌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공정거래법 상 사업기회 제공행위 위반으로 기소된 대림산업(현 DL)과 이해욱 회장에 대한 유죄를 확정했다.

대림산업은 이해욱의 개인회사였던 APD(현 글래드호텔앤리조트)에 글래드(GLAD) 브랜드를 무상양도했다. 옛 오라관광(현 글래드호텔앤리조트)은 APD에 브랜드 스탠다드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해욱과 그의 장남 이동훈은 APD 자산가치 상승이라는 부당이익을 얻었다.

DL그룹 사례는 사업기회 제공을 통한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한 최초의 제재였고, 사법부를 통해 내려진 첫번째 최종 판단이었다. 다만 DL그룹 사례는 '브랜드'라는 분명한 무형자산에 대한 무상제공이었다는 점에서 부당이익의 귀속이 어느 정도 구분될 수 있는 경우였다. 그렇지만 SK실트론 사례는 경영권이 없는 지분에 대한 간접적인 제공행위라는 점에서 판단이 쉽지 않은 경우다.

이와 관련해 서울고법 재판부는 "사업기회 제공 행위에 대한 해석은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되어야 하고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해석 방침을 정했다. 이를 기초로 "SK가 최태원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한 행위를 하였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SK가 잔여지분 29.4%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처분 권한 없음 ▲잔여지분 29.4% 매각공고 이전 SK실트론 지분 70% 확보 ▲잔여지분 29.4% 입찰불참 사전결정 ▲SK와 KTB간의 위약벌규정 ▲최태원의 잔여지분 29% 낙찰에 SK의 관여증거 없음 등을 근거로 SK의 사업기회 제공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재판부의 '사업기회'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SK실트론 판결에서의 사업기회는 '경영권없는 SK실트론 잔여지분 29.4%'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또는 미래 시점에 SK실트론 잔여지분 29.4%는 향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또는 배당금 수취 형태로 상당한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 지분(29.4%)은 SK가 보유하고 있다거나 그에 대한 처분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했다. 경영권없는 잔여지분이 사업기회인가 아닌가하는 쟁점에 앞서 SK의 처분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사업기회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공정위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심사지침'에서 "사업기회 제공은 자회사의 유상증자 시 신주인수권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제공객체에게 실권주를 인수시키는 행위, 회사가 유망한 사업기회를 스스로 포기하여 제공객체가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제공객체의 사업기회 취득을 묵인하는 소극적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SK가 SK실트론 잔여지분 29.4% 경쟁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이 같은 소극적 방법을 통한 사업기회 제공행위로 봤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공정위의 심사지침처럼 사업기회 제공행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수용하지 않았다. 사업기회 제공행위가 형사처벌 규정의 구성요건이 되기에 엄격한 해석을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공정위는 SK의 SK실트론 잔여지분 29.4% 입찰 포기를 '소극적 방식의 사업기회 제공행위'로 봤다. 또 SK가 최태원의 입찰참가를 묵인했고, 비서실과 재무팀·법무담당 임원의 보고 등의 여러 방식으로 입찰을 지원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렇지만 서울고법 재판부는 최태원의 입찰거래 관여·지시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SK의 잔여지분 입찰참여 포기가 먼저 있었고, 그 이후에 최태원의 입찰참가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부당성에 대한 입증도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