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은 지난해 자본시장법 시행을 계기로 위탁매매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자산관리와 투자은행(IB) 등 자본시장법이 허용해 준 신사업 영역에 적극 진출하면서부터 BR 조직을 잇달아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같은 금융권이라고 하더라도 은행과 달리 증권업계에서는 BR 조직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주로 국내 증권사들은 위탁매매 중심의 브로커리지 업무에 집중했던 만큼 고객이나 상품관리에 대해 크게 고민할 부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진출하는 사업영역에서는 고객 관리와 상품 개발 능력 등이 핵심 경쟁력이다. 증권업계 최고정보책임자(CIO)들은 “앞으로 BR 조직이 비즈니스를 선도해 나가는 조직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인현 투이컨설팅 대표는 “차세대시스템이 구축됐다는 것은 증권사의 경영진과 현업부서가 새로운 무기를 지급받은 것과 같다”면서 “결국 차세대시스템의 성과는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현실적으로 현업부서가 어떤 데이터가 있고 무슨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BR 조직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증권사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BR 조직을 대대적으로 운영해 왔다. 하지만 그 당시 설립된 BR 조직은 현업의 요구를 관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최근 증권사의 BR 조직에 요구되는 역할은 예전처럼 IT와 현업과의 가교 역할을 기본으로 하되 프로젝트 관리부터 품질 개선, 선진 기술 검토, 신규 비즈니스 발굴 등의 역할이 더 다양해졌다.
차세대시스템 가동 이후 BR 조직을 신설한 현대증권의 경우 새로운 BR 조직에게 현업 부서의 요구 관리에서부터 프로젝트 관리, 사후 사용자 만족 개선, 기술 컨설턴트 등의 역할까지 전담하도록 했다. 향후에는 사용자 요구 수준을 관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규 비즈니스를 발굴해 내는 단계까지 역할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현대증권 박선무 상무는 “예전에는 BR 부서 직원들이 단순한 전달자 역할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IT직원의 ‘롤 모델’로서 BR 조직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며 “그래서 15년차 정도의 증권IT 전문가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1989년 업계 최초로 BR 조직을 설립한 대우증권도 현 BR 조직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현업 밀착형 비즈니스 관계관리(BBR) 조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증권사들은 BR 조직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BR 조직의 규모나 역할 확대는 곧 업무 관점에서 IT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업무 경쟁력을 높이고 IT투자효과도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상적인 증권사의 BR 조직은?=현재 국내 주요 증권사들의 BR 관련 조직은 업무 처리 방식에 따라 역할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신규 비즈니스와 개선 요건이 발생했을 때 △업무개발팀이나 업무개선팀 등 비즈니스 관련 조직에서 1차적으로 검토하고 난 뒤 정리한 내용을 IT조직에 전달해 협력하는 방식과 △초기 비즈니스 검토 단계부터 IT인력과 함께 내용 파악을 하는 방식이 있다. 후자의 방식이 최근 BR 조직을 신설하는 증권사들이 많이 채택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주로 현업과 IT인력이 비슷한 비율로 구성되거나 IT인력이 더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IT본부내 BA전략팀이 후자의 BR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원은 총 8명으로, IT와 현업 인력이 4명씩 구성돼 있다. 이 회사에서는 조직 구성원들의 프로젝트관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PMP자격증과 CISA자격증을 취득하길 권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는 BR 조직의 구성원 중 80%를 IT인력으로 뒀고, 나머지 20%를 현업 인력으로 두고 있다.
김병윤 미래에셋증권 대표는 “올해 10명의 인원을 13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증권 비즈니스와 IT인력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으로 육성해 신규 비즈니스를 신속하게 시스템화할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BR 조직을 신설한 우리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은 IT인력으로만 BR 조직을 구성했다. 이유는 현업의 비즈니스 전문가가 정보시스템을 이해해 나가는 것보다 IT전문가가 현업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당 증권사의 관계자는 “초기에는 현업 인력으로만 구성해서 운영을 시도했는데 기술에 대한 이해부족 등으로 인해 현업 인력들이 IT분야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면서 “반면 IT전문가들 중에서는 현업의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BR 조직원으로 더 적합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의 BR 조직으로 비즈니스 전문가와 IT전문가가 혼합된 형태를 추천하고 있다. 선진 금융지식과 규제관련 지식, 상품과 채널 전문 지식 등을 갖춘 비즈니스 전문가와 회사의 IT아키텍처 및 데이터 관련 전문지식을 보유한 사람 IT전문가가 같이 투입돼야 비즈니스 조직과 IT조직간의 빠른 협조를 이끌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인현 대표는 “이상적인 BR 조직은 비즈니스와 IT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돼야 하며 특히 외부 컨설턴트도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선진기업들이 프로세스혁신(PI)작업을 할 때 외부 인력의 조언을 구하는 것처럼 신규 검토 사안들이 많은 만큼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ICC 조직으로 거듭나야= BR 조직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면서 증권사 CIO들은 BR라는 명칭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BR은 IT서비스관리(ITSM)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IT를 현업에 대한 서비스 개념으로 보고 현업의 요건을 해결하기 위한 조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증권업계에서는 가트너가 창안한 명칭인 BICC(Business Intelligence Competency Center)가 현 BR 조직의 역할과 의미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BICC는 현업의 요구사항을 정리해서 해결하는 차원을 뛰어 넘어 현업이 생각하지도 못한 차원의 과제를 도출하고 이를 기업에 적용하는 과정까지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증권사 CIO들은 향후 BR 조직이 ‘지원역할’에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거나 서비스 프로세스를 혁신해 나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IT가 비즈니스를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끌고 갈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데 BR조직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BR 조직을 향후 BICC 조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권한과 프로세스가 확보돼야 하는데, 여기에 CIO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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