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IT 프로젝트 '실패'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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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IT 프로젝트 '실패'에서 배운다
  • 신혜권 기자
  • 승인 2009.08.3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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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IT업계에서는 주사업자를 전격 교체한 현대해상화재 차세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가 화젯거리다. 잇단 가동일 연기로 난항을 겪다 주사업자였던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 이어 자회사인 현대HDS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동부생명은 차세대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주사업자를 한국IBM에서 자회사인 동부CNI로 교체했다. 개발 단계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 동부생명 차세대 프로젝트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례다.

차세대 프로젝트의 일정이 지연되면 발주처는 엄청난 직·간접적 손실을 입게 된다. 차세대 프로젝트 지연으로 과거 우리은행은 400억원을, 메트라이프생명은 20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될 정도다. 대형 차세대 프로젝트가 문제가 된 것은 비단 금융권 뿐만은 아니다. KT(옛 한국통신)의 통합고객마케팅시스템(ICIS) 구축 프로젝트나 SK텔레콤의 차세대마케팅(NGM) 프로젝트는 이들 금융회사에 비해 몇 배나 더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예정됐던 차세대 프로젝트의 가동 시점이 몇개월 미뤄지는 것은 예삿일로 여기기도 한다. 왜 차세대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난항을 겪는 것일까. 대형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가 잇따르고 있는 요즘, 차세대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던 대표적인 사례들을 잘 살펴보는 것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한때 ‘실패’의 낙인이 찍였던 이들 대형 프로젝트들이 사실상 원점에서 재출발하는 아픔을 견디면서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대규모 IT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기업이나 기관들이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차세대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는 적게는 몇백억원이, 많게는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그만큼 개발 범위도 넓고, 투입인력도 많다보니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다분하다. 대부분의 차세대 프로젝트는 이러한 위험 요인들을 안고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차세대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완료되고, 어떤 차세대 프로젝트는 사업 자체가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우리은행과 메트라이프생명 차세대시스템, SK텔레콤 NGM 프로젝트 사례를 분석해 보면 세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잘못된 주사업자 선정이다. 두번째, 확고한 프로젝트 리더십 부족도 공통된 실패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업 등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이다. 큰 문제가 발생된 대부분의 대형 프로젝트는 이 세가지 원인을 모두 갖고 있다.

차세대 IT 프로젝트 '실패'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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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업자 선정은 ‘첫 단추’=최근 문제가 된 현대해상화재, 동부생명 모두 문제의 원인으로 잘못된 주사업자 선정이 거론되고 있다. 이로 인해 두 회사는 시스템을 가동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사업자를 변경했다. 앞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우리은행과 메트라이프생명 역시 주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실수가 차세대 프로젝트의 실패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잘못된 주사업자 선정은 대부분 주사업자의 경험 부족에 기인한다. 현대해상화재, 동부생명, 우리은행, 메트라이프생명, 신협 등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주사업자들은 자신들이 제시한 코어 패키지 솔루션에 대한 커스터마이징을 적절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의 특수한 금융환경을 무시한 채 글로벌 패키지 솔루션이 담고 있는 사상만 무리하게 적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은행은 차세대 프로젝트 주사업자로 액센츄어를 선정했고, 액센츄어가 제안한 외국계 패키지 솔루션인 ‘알타미라’를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알타미라 솔루션은 미국 금융환경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국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수정 및 보완 작업이 필요했다. 메트라이프생명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메트라이프생명 또한 액센츄어가 외국계 패키지 솔루션인 ‘네비시스’를 적용하려 했던 사례다.

우선 우리은행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미국 금융기관의 결산체계에 맞춰진 솔루션이 국내 금융기관의 결산체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특히 배치 업무 반영이 문제였다. 미국의 경우 일일 업무가 마감되면 배치 업무를 다음날까지 진행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배치업무도 일일 결산이 이뤄지는 시점에서 함께 이뤄지게 된다. 따라서 미국 금융환경에 맞춰 개발된 패키지 솔루션으로는 국내 결산 체계를 맞출 수 없었다.

사용자 편의성을 국내 수준에 맞추지 못한 것도 문제다. 네비시스 등 외국계 패키지 솔루션은 영업점 직원이 하나의 상품을 판매할 때 조회해야 하는 사항들이 모두 각기 다른 화면에서 이뤄진다. 이러다 보니 조회 항목마다 매번 화면을 바꿔서 진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됐다. 하나의 화면에 모든 조회 항목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국내 영업점 직원에게는 적용이 불가능하다.

보험 솔루션도 해외 솔루션은 대부분 보장성 보험 중심이어서 변액보험 등 수익성 보험 판매가 급증하는 국내 상황에서 상품 개발 및 운영 지원이 적절하게 이뤄질 수 없다는 문제점도 갖고 있다.

우리은행과 메트라이프생명 차세대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외국계 솔루션 공급업체의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당연히 선진국의 패키지 솔루션에 맞춰 업무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문제는 더욱 커졌고 결국 개발까지 진행했던 패키지 솔루션을 걷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은행은 알타미라를 걷어 내고 IBM의 코어뱅킹 솔루션인 ‘e뱅크’를 적용해 대부분 커스터마이징했다. 주사업자가 삼성SDS로 바뀐 메트라이프생명도 당초 도입했던 네비시스를 걷어내고 기존에 미래에셋생명이 자체 개발해 사용해왔던 코어인슈어런스 솔루션을 적용했다. 우리은행에 이어 차세대를 착수한 기업은행은 앞선 사례를 거울 삼아 외국계 패키지 솔루션인 ‘테메노스’를 적용했지만 자체개발 수준으로 커스터마이징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주사업자의 경험부족은 해당 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어지고, 결국 프로젝트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업무요건 분석을 잘 해 놓고도 개발단계에서는 ‘헤매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지나친 하청업체 혹은 프리랜서 위주의 인력 투입으로 인해 개발인력의 질적 수준이 낮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확고한 리더십은 필수=확고한 프로젝트 리더십 부재도 프로젝트를 난항에 빠뜨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우리은행이 처음 차세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발주할 당시 우리금융지주는 국내 금융권 최초로 지주 IT계열사를 출범시키려고 할 때였다. 이로 인해 프로젝트 진행 중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이 출범했다. 이후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은 우리은행의 차세대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즉, 주사업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이 발주사 프로젝트관리자(PM) 역할까지 하게 된 셈이다. 우리은행은 초기 단계만 하더라도 차세대 프로젝트의 리더십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초기부터 지적돼 온 문제점들은 수정, 보완되지 못한 채 가동 직전까지 프로젝트를 끌고 가게 됐다.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동 직전에 이르러서야 전 시스템의 10%도 가동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은행이 취한 개선방안으로는 가장 먼저 단장급으로 차세대 총괄 PM을 선임하고 프로젝트 리더십을 은행이 갖도록 했다. 또 정확한 프로젝트 현황 파악을 위해 감리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우리은행 차세대 프로젝트는 은행권에서 감리 제도를 도입한 첫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의 차세대 프로젝트도 이와 유사하다. 초기 메트라이프생명의 차세대 프로젝트 리더십은 글로벌 본사 조직에서 파견나온 최고정보책임자(CIO)에게 있었다. 메트라이프생명은 전 세계적으로 본사 CIO가 1명 있고, 지역 허브별로, 또 각국별로 CIO가 존재한다. 여기에 글로벌 본사 조직 중 하나인 인터내셔널 조직에도 CIO가 있다. 바로 인터내셔널 조직의 CIO가 한국에 파견돼 차세대 프로젝트 리더를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 리더의 한계로 인해 결국 프로젝트는 어려움을 겪게 됐다. 메트라이프생명도 극약 처방으로 프로젝트 리더를 국내 CIO로 교체했다. 이후 국내 CIO는 국내 환경에 맞는 프로젝트 인력 관리, 시스템 개발 등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지금까지도 통신업계 단일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로 평가받는 SK텔레콤의 NGM 프로젝트도 리더십 부족으로 인해 문제가 된 사례다. 지난 2003년 프로젝트에 착수해 2005년 9월 가동을 목표로 진행된 SK텔레콤 NGM 프로젝트는 가동 몇개월을 남겨 놓은 2005년 3월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모든 개발인력을 철수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초기 SK텔레콤의 NGM 프로젝트는 마케팅본부가 주도했다. 이로 인해 현업 주도의 대규모 IT프로젝트라고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당초 목표했던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마케팅본부 책임자가 교체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프로젝트의 명확한 리더십이 사라졌고 각종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프로젝트 주도권이 다시 IT로 넘어가게 되고, CIO가 프로젝트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NGM 프로젝트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SK텔레콤은 NGM 프로젝트를 재가동하면서 주사업자 변경, 프레임워크 도입 등 새로운 개발 체계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내·외부 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 강화해야=대규모 프로젝트의 성공적 요인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문제가 발생돼도 이를 공유하지 않고 당사자만 알고 덮어두려 하다가 종국에는 더 큰 문제가 터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곤 한다. 프로젝트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1000여명까지 투입되는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는 성공적 프로젝트의 기본 사항이다. 특히 현업 담당자와 커뮤니케이션 활성화가 핵심 성공요인이다.

우리은행은 차세대 프로젝트가 어려움을 겪기 전만 해도 우리금융정보시스템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부족했다. 실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은행의 현업 담당자들과는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없었다고 할 수준이었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전행 차원의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현업부서의 임원들은 차세대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로 인해 IT부서가 시스템을 가동하기 직전까지도 현업부서는 신시스템의 화면을 구경조차 못하는 상황도 발생됐다.

이후 우리은행은 프로젝트를 재가동하면서 전 공정에 걸쳐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관계자는 물론, 현업의 사용자, 전 임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실시했다. 차세대시스템 가동에 따른 변화관리 차원으로 현업 사용자를 위한 차세대시스템 홍보 동영상을 제작, 배포하기도 했다. 또 차세대시스템을 주제로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단순히 알리는 수준을 넘어 현업 사용자의 참여도 적극 유도했다.

이러한 우리은행의 사례는 향후 기업은행이 차세대시스템 가동 연기로 인해 발생된 노조와의 마찰을 해소하기 위한 벤치마킹 사례로도 활용됐다. 당시 기업은행은 제 시기에 시스템을 가동할 수 없게 되자 노조가 프로젝트 실패를 선언하고 개발에 참여하는 노조원을 모두 정상 출퇴근 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기업은행은 심각한 문제를 겪었고 이 문제는 결국 노조, 현업 등 다양한 은행 내부 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통해 해결됐다.

메트라이프생명도 프로젝트를 재가동하면서 다양한 부서의 관계자들을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기 위해 각종 간담회, 팀미팅 등 다양한 방안을 도입했다. 무엇보다도 변화관리를 통해 그동안의 문제를 서로 공유하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차세대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수행한 IT업체의 한 대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프로젝트 참여자와 현업 관계자 모두 방관자가 되는 것”이라며 “이러한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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