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폭언·성희롱에 멍드는 바이오 IR담당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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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폭언·성희롱에 멍드는 바이오 IR담당자들
  • 남두현 기자
  • 승인 2020.05.2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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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미지 고려해 '쉬쉬'…"주가부양 홍보행태에서 비롯" 지적도

[프레스나인] 바이오기업 공시 담당자들이 주주들의 폭언에 신음하고 있다. 주가 등락폭이 크고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많은 업종 특성상 다른 분야보다 주주들의 횡포가 심하다고 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일부 공시 담당자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정신과 상담을 받거나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언이나 성희롱 발언을 녹취하더라도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담당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전언이다.

한 바이오기업 공시 담당 여직원은 "주가가 떨어질 때면 욕과 외모비하를 비롯, 대표의 첩이냐는 말까지 서슴치 않는 주주들도 있다"면서 "대부분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라도 글을 올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고객응대근로자 보호 규정을 마련하는 등 감정노동 종사자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기업 공시담당자들은 이같은 서비스업종에 해당하지 않아 관련법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앞선 관계자는 지적했다.

하루 수십통의 항의전화를 견디다 못해 정신과 진료를 받는 담당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회사에선 문제가 불거지지 않게 대처하라는 지시만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하루 많게는 50통까지 항의전화를 받는다"면서 "동시에 많은 전화가 걸려와 통화중일 때에도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더 심한 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임상연구 등록 사이트에서 연구원 전화번호를 찾아 폭언을 하기도 한다"며 "공시담당자들은 그나마 익숙하지만 주주를 겪어보지 않은 젊은 연구원들은 충격을 받는 것을 자주 봐왔다"고 전했다.

주주들의 이같은 폭언은 바이오 업종에서 유독 심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가 오르내림이 큰 만큼 개인주주들 항의도 과격하단 것이다.

바이오에서 타업종으로 이직한 공시담당자는 "이곳도 주가가 하락할 때 화내는 주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바이오업종에 비해선 훨씬 나은 상황"이라며 "바이오는 주가흐름이 타업종과 다른 것이 원인인 것 같다"고 봤다.

바이오 개인주주들의 거친항의는 기업에만 국한하지 않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일부 담당자들도 임상시험 승인 등에 관한 주주들의 항의로 고심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바이오기업 주주들은 허가를 빨리 해주지 않거나 허가가 반려되면 항의전화를 하는 일이 많다"면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임상)과 관련해서도 항의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문제는 국내 기업들의 홍보행태에서 비롯했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공시나 언론홍보에 규제가 엄격한 미국에선 주주들의 이러한 폭언사례가 적다는 것이다.

한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미국에선 연구결과 등에 대한 해석을 과하게 하면 소송의 여지가 있는 만큼 한국에 비하면 보도자료가 밋밋할 정도다"면서 "이에 비해 한국에선 '확신한다', '굉장히 좋다' 등의 표현이 흔하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배경에서 미국 바이오기업은 주가부양이 아닌 투자자들을 위한 정보 전달이라는 본연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앞선 관계자는 "국내 기업도 정보공개를 성실히 하고 주주들도 (주가부양은) 기업이 할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며 "각자가 할일을 할 뿐인데 공시담당자가 화풀이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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