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CIO의 리스크와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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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CIO의 리스크와 책무
  • 유효정 기자
  • 승인 2009.09.06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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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CIO의 리스크와 책무
서버 처리 속도가 늦어 결산 때만 되면 며칠 밤을 새우는 직원들. 하루에도 몇 번씩 시스템이 다운돼 업무를 마비시키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그러나 직원들이 밤을 새고 애태우는 것은 나몰라라 하며 빗발치는 업그레이드 요구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있다면?

만약 이런 CIO가 있다면, IT 예산을 적게 쓴다는 이유로 경영진의 총애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규모의 IT 투자와 현업을 뒤흔드는 도전을 한다는 것은 곧 실패의 위험성을 안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굳이 리스크를 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CIO가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긁어 부스럼 내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계산도 할 법하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경영진의 문책도 이같은 결정에 한 몫 거들게 된다.

국내 굴지의 기업에 IT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의 한 임원은 “최근 고객사 CIO들이 경비절감을 위해 위험요소를 피하려고 IT 투자를 줄이면서 해당 시스템 장애에 대한 불만과 AS 문제가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다”며 “CIO는 자리를 유지하겠지만 유지보수 업체 입장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사실상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리 보존을 위해 이를 관망하는 CIO가 있다면,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현업의 직원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CIO는 IT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IT와 업무간 유기적 상관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존재다. 실제 현업에서 시스템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는지와 같은 세심한 관찰과 배려를 습관화하고 문제가 있다면 즉각 해결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베스트 프랙티스는 번듯한 IT 시스템이 아니라 얼마나 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극대화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베스트 프랙티스는 구축이 완료되고 3년 이상 지난 후 사용자 조사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최근 한 제조업계 CIO는 기업의 위기 때 업무상 효율 증진이 더욱 절실하다는 판단 하에 굵직한 IT 투자를 경영진에 강력히 종용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CIO는 기자에게 "비록 돈이 들더라도 직원들이 일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나의 소임이라고 믿고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를 위해 어떤 직원도 내 앞에와서 편하게 터놓고 업무상 애로사항을 이야기할 수 있는 CIO가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권위있는 CIO가 되기를 포기하고, 친근한 CIO가 되기를 스스로 택한 이유다.

물론 IT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도전에 한 표를 던져 줄 경영진의 뚝심도 필요하다. 큰 규모의 투자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CIO와 이런 CIO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경영진의 안목이 필요하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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