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권영수 사장은 LG디스플레이의 저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형 패널의 가파른 가격 하락이 계속되면서 공장가동률도 낮아진 지난해 12월 출하량·출하면적·매출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삼성전자를 제치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것이다.
LG디스플레이가 이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빠른 대응력’을 목표로 전사적으로 추진했던 공급망관리(SCM)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최고경영자(CEO)인 권영수 사장과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정호영 부사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전 사업부문에서 핵심인력들이 참여해 2년째 진행되고 있다. 2009년 8월 CFO 직속의 SCM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수요부터 생산에 이르는 단계적 프로세스 혁신과 시스템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정호영 부사장은 SCM 프로세스 설계 단계에서부터 정기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심지어 이틀간 진행된 종일 회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LG디스플레이 경영진이 SCM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보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정 부사장은 지금도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오후 반나절을 SCM 담당 임원 및 자재·생산·물류 담당 임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SCM 프로세스와 성과를 점검하는 데 보낸다. SCM ‘규칙’이 조직에 내재화되도록 엄정한 감독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앞서 ‘7대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통합된 전사적자원관리(ERP), 생산계획시스템(MES) 등을 기반으로 전사 SCM 프로세스 혁신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단일 계획 체계가 자리를 잡으면서 재고관리 수준이 높아지고 긴급 비행기 운송 비중도 80% 가까이 줄었다.
LG디스플레이는 고객예측관리시스템, 자재조달계획관리시스템, 수요관리시스템, 공급망계획시스템를 순차적으로 가동하면서 지난해 3월 1단계 프로젝트를 최종 완료했다. 수요관리 패키지는 오라클 제품을, 공급망계획 패키지는 자이오넥스 제품을 도입했다.
1단계 프로젝트에서 LG디스플레이가 겪은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부품 및 재료 수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발빠르게 대응하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당시 빠르게 늘어나던 LED TV 패널 수요로 인해 LED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광학필름 조달도 쉽지 않았다. LCD 패널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이 같은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이에 자재조달계획관리를 위한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백라이트, 캐패시터, 드라이버IC 등 부품 입고 상황과 재고 현황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자재에 대한 비상 상황이 발생해도 곧장 생산계획에 반영돼 실시간 공급관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구매SCM’까지 완비…‘드림SCM’ 완성할 것=경쟁사인 삼성전자 LCD사업부의 경우 내부 고객과 소니에 거래가 집중돼 있는 반면에 LG디스플레이는 고객 포트폴리오가 훨씬 다양하고, 수요 측면에서도 삼성전자와 달리 드라이버IC 등 대부분 부품을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전사적 SCM 역량 강화가 더 필요한 이유다.
이 때문에 권 사장은 SCM 프로젝트 기간 동안 단순한 가격경쟁력보다 납기준수, 고객 긴급요구 대응 등 SCM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LG디스플레이만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런 의지가 1단계 SCM 프로젝트에 집중 반영되면서 지난해 LG디스플레이는 납기 대응력을 높일 수 있었고, 이는 시장점유율 제고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이후에는 협업시스템을 개선하고 물류를 최적화하는 등 SCM 2.0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협력업체들과 ‘구매 SCM’에 초점을 맞춘 이 프로젝트는 올 연말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협력업체들과 협업시스템을 개선하고 주요 부품 및 자재 협력업체들과 협업포털 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백라이트모듈시스템(BMS) 형태의 OEM 사업에 대한 SCM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반제품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인 운송 계획을 수립하는 등 관련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최근 중국 OEM 합작사 등에 자재소요계획(MRP)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자재 조달 역량도 높였다.
LG디스플레이는 내년쯤 높은 수준의 실시간 대응력을 갖춘 ‘드림(Dream) SCM’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SCM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이 LG디스플레이의 목표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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