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밖에서 비추는 것과 안에서 쏘는 빛의 차이
남 교수가 세계 최초로 고안한 '전방 내 조명 이용 수술법'은 수술 도구에 미세 조명기구를 장착해 수정체 안을 비추는 방식이다. 백내장 수술은 눈 속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를 둘러싼 얇은 막(수정체낭)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수정체 내부를 수술해야 한다. 수정체낭에 남아 있는 상피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게 핵심이다. 미세한 눈 내부를 살피기 위해 현미경과 시야를 밝게 하는 조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에는 수술 현미경에서 나온 조명을 사용한다. 40여년간 이용된 표준이다. 일부 환자에게 시력에 중요한 황반과 안구 표면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다. 환자 눈부심이 심하고 수정체 뒷부분까지 세밀하게 확인할 수 없다.
남 교수는 수술도구에 미세한 조명기를 설치, 눈 안에 삽입해 내부를 비추는 방식을 고안했다. 쇼윈도를 예로 들면 마네킹을 외부 조명으로 비추는 것보다 내부에서 비추면 훨씬 잘 보이는 원리다. 기존 현미경 조명보다 10분의 1 밝기로도 내부 전체를 비춘다. 사각지대가 거의 없고, 황반과 안구 손상을 줄인다. 시야 확보를 위해 사용하는 전낭염색, 동공확장 물질 등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 시간과 경제적, 신체적 부담을 줄인다.
◇35세 당뇨병 여성부터 100세 노인까지…어려운 수술도 'OK'
이날 오전 수술환자는 35세 여성으로 당뇨병으로 인한 당뇨망막병증을 앓고 있다. 정도가 심해 실명기로에 있는 중증환자다. 당뇨망막병증 환자 대부분이 60~70대 노인인 것을 감안할 때 젊은 여성은 흔치 않다. 연이어 진행된 수술에는 주민등록상 96세 남성으로, 실제 나이는 100세가 훨씬 넘은 초고령 백내장 환자다. 남 교수도 수십 년간 수술 경력 중 100세 이상 초고령 환자는 처음이라고 했다. 힘든 수술이 예고됐다.
당뇨망막병증과 백내장은 질병 원인은 다르지만, 수술법은 유사하다. 생체 수정체를 제거한 뒤 인공수정체를 삽입하게 된다.

시야가 확보되면 초음파 유화기로 백내장 수정체를 부순다. 나이가 젊은 탓에 수정체가 덜 굳어 제거하는데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째고 부순 수정체를 초음파 유화기가 모두 빨아들이면 인공 수정체를 삽입한다. 이 과정까지 마치면 절개한 구멍을 매우고 30여분간의 수술이 끝난다. 이 수술에 사용된 안내 조명기 광도는 0.1광 정도다. 일반 수술 현미경 조명이 1.5~2.5광 인 것을 감안,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남 교수는 “젊은 환자의 인공 수정체 삽입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며 “하지만 당뇨망막병증은 염증이 잘 생기는데다 합병증 확률이 높아 수술이 잘돼도 경과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노인 환자 상태는 심각했다. 고령이어서 눈을 고정시키는 작업부터 어려웠다. 통증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백내장 정도가 심해 딱딱하게 굳은 수정체를 제거하는 게 쉽지 않다. 10년 동안 백내장 치료를 받았지만, 수술을 하겠다는 의사가 없었다. 백내장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남 교수 조차 수술 성공률은 50%정도로 예상했다.
수술 방식은 앞 환자와 동일했다. 마취 후 구멍을 뚫어 조명기와 초음파 유화기를 집어넣는다. 돌처럼 굳은 수정체는 초음파 유화기와 차퍼로 긁어내도 좀처럼 부서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환자가 고령이라 안구를 고정하기 어려웠다.
시야 확보를 위해 추가로 안구에 4개 구멍을 뚫어 홍채 걸개로 고정시켰다. 간신히 시야를 확보한 다음 수정체를 걷어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일반 수술보다 2배 가까이 걸린 1시간이 지나서야 인공수정체 삽입까지 무사히 마쳤다.
남 교수는 “100세 이상 노인 백내장 수술은 처음인데다 환자가 전립선 비대증 약을 복용 중이어서 수술에 애를 먹었다”면서 “일반적으로 전립선 비대증 약은 홍채 근육을 약하게 해 수술을 어렵게 하지만, 다행히 수술이 잘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사고 전환이 혁신을 낳는다
남 교수가 백내장 수술에 사용하는 안내 조명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존 망막 수술에 활발히 활용되는 조명기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백내장 수술에 적용했다. 단순한 사고 전환이지만 안과 분야에 끼친 영향을 크다. 남 교수를 비롯한 가천대 길병원 안과팀이 발표한 당뇨망막병증 관련 논문은 국제 학술지 '레티나'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 논문으로 선정됐다.

남 교수는 “진료, 수술 현장에서 느낀 불편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혁신적 솔루션을 탄생시킨다”며 “기존 한계를 해소한 차세대 안구 내 조명기를 개발해 백내장 수술 표준으로 정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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