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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나인 연중기획] 2020년 잘 노는 사람들③,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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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나인 연중기획] 2020년 잘 노는 사람들③,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 임준 기자
  • 승인 2020.01.20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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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놀고 성공하는 사람들과의 유쾌한 만남
김혜선 조직위원장, 꿈꾸는 사람들의 축제를 만들다

[프레스나인] 임준 기자=2020년, 사람들은 새로운 사업을 꿈꾼다. 다소 거창한 계획은 희망도 주지만 기대가 커져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된다. 몸이 굳어지고, 계획은 틀어진다.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본인이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면 어떨까? 노는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한다. 2020년, 정말 잘 노는 사람들 50인을 취재한다. 그 세 번째 순서로 춘천영화제를 통해 꿈을 꾸는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를 만들고 있는 김혜선 조직위원장을 만나보았다.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혜선, 이성규 감독에게 발목 잡히다

겨울이라 그런지 경춘선 열차에는 승객이 적었다. 춘천으로 향하면서 지하철 창을 통해 바라본 풍경은 아름다웠다. 꽃이 피고 푸른 산천이 될 봄까지는 쉬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지나치면서 바라보는 마을, 고장마다 사람들은 살아 있고, 모든 사연과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서울에서 느꼈던 답답한 마음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도착한 춘천역. 날은 봄 날씨처럼 푸근했고, 그곳에서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을 만났다.

“아시겠지만 춘천영화제는 다큐멘터리를 찍은 고 이성규 감독님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독립다큐멘터리 피디들을 모아 의욕적으로 활동하던 이성규 감독님이 암에 걸리셨죠. 그리고 이 감독님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어요. 그때 이 감독님이 ‘시바, 인생을 던져’라는 첫 극영화를 만드셨을 때였죠. 이성규 감독님은 동네 1년 선배였죠. 같이 자랐어요.”

초등학교 시절 김혜선 위원장
초등학교 시절 김혜선 위원장 (사진=김혜선 페이스북)

 

고 이성규 감독(좌)과 김혜선 위원장(우)의 20대 시절
고 이성규 감독(좌)과 김혜선 위원장(우)의 20대 시절 (사진=김혜선)

김혜선 위원장은 춘천 토박이다. 대학까지 춘천에서 나와 미술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김 위원장은 강원대학교, 이성규 감독은 한림대학교 출신이다. 그 당시 동네 선후배들이 클래식 매니아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모여 같이 놀았다고 한다. 기타 하나 둘러매고 공지천이나 명동 닭갈비 골목을 돌아다니며 청춘의 낭만을 즐겼다. 그들은 이후에 서울로 가거나 춘천에 남거나 하면서 열심히 살아왔고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방송과 영화 쪽을 오가면 활동하는 이 감독에 비해 김 위원장은 결혼하고 애 낳고, 교사로서 평범하게 살아왔다.

“갑자기 성규 형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병원에 가보니 너무 늦은 거예요. 의사들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퇴원해서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하고, 가족들은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청춘을 함께 한 선후배들이 모두 안타까워했죠. 재능 있고 열정적인 감독이라는 것만 알았지, 저는 영화쪽 일은 잘 몰랐죠. 인도에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고생고생 하면서 많이 힘들었나봐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한 생전의 이성규 감독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한 생전의 이성규 감독 (사진=영상 캡쳐)

 

이성규 감독 생전 모습 (사진=영상 캡쳐)
이성규 감독 생전 모습 (사진=영상 캡쳐)

김 위원장은 이성규 감독님이라고 존대를 하다가 성규 형이라고 명칭을 바꾸며 친근함을 내비쳤다. 정말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온 동네 오빠이지 않는가. 그런데 오빠가 아닌 형이라는 표현이 이상하게 더 정감이 갔다. 이성규 감독에게 그런 사정이 생기면서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춘천에 다시 모였다. 지방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모두 대처로 나아가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인데, 오히려 이성규 감독의 소식은 이들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남편과 아들이 있었고, 살림을 하고 있는 전업주부였다.

“성규 형 영화가 12월 개봉을 앞두었는데,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그 전에 돌아가실 것 같더라고요. 다들 안타까워 하다가 특별상영회를 하자는데 마음을 모았어요. 저도 성규 형 생각하면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한 사람만 모르는 특별상영회’가 바로 그 행사에요. 주변 지인들의 노력과 참여도 좋았지만, 성규 형의 ‘시바, 인생을 던져’ 상영회는 만석이 되며 성황리에 끝났죠.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어요. 모두 하나가 된 느낌이었죠. 성규 형은 그 자리에서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달라’고 마지막 부탁의 말을 남겼어요.”

생전에 투병생활 중이었던 이성규 감독 (사진=영상캡쳐)
생전에 투병생활 중이었던 이성규 감독 (사진=영상캡쳐)

 

한 사람만 모르는 특별상영회에서 이성규 감독과 관객들 (사진=춘천영화제)
한 사람만 모르는 특별상영회에서 이성규 감독과 관객들 (사진=춘천영화제)

이성규 감독이 죽고,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남았다. 다음 해가 되고, 고 이성규 감독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질문이 남았다고 한다. 이것으로 족한 것인가? 이성규 감독의 마지막을 함께 한 것으로 끝나도 되는 것일까? 독립다큐멘터리 영화를 부흥시켜 달라고 한 이성규 감독의 유지는 공허한 말일 뿐일까?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혜선, 남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다

추억의 힘은 강하다. 특별히 지인들과 사랑을 나눈 기억은 나의 존재감을 흔든다. 김혜선 위원장과 지인들은 이성규 감독이 죽고 다음 해 다시 시작한다. ‘한 사람으로 시작된 춘천다큐영화제’가 그것이다. 이것이 춘천영화제의 공식적인 시작이었다. 하지만 영화제라고는 하나 겨우 2회 상영을 하는 상영회 수준의 영화제였다. 영화제를 위해 지인들과 주변의 후원금을 받았다. 장소나 기타 상황들에 기꺼이 참여하는 분들의 도움도 컸다. 어쩌면 춘천시민이 이성규 감독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 뭉친 거라 할 수 있을까?

“2회는 춘천다큐멘터리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이틀간 CGV춘천명동과 춘천 일원에서 진행되었죠. 1회 때보다는 좋았지만, 그래도 역시 단출한 행사였어요. 그렇게 되다보니, 다들 생업에 바쁘고 어려운 시간을 짬내서 참여하다보니, 전업주부인 제가 전체의 관리를 맡게 되었어요. 제가 뭘 알겠어요. 영화를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영화를 정말 좋아하기는 해요. 그 경계가 뭔지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것과 영화를 하는 일의 차이를 많이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제를 하면서 많이 부끄러워요.”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김 위원장과 지인들은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를 잘 모르는 춘천 시민들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면 이성규 감독이 이야기한 독립영화를 알리고,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지역사회에 후원조직을 만들고, 지자체 등에 제안해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시작했다고 한다.

“저는 영화제가 자리를 잡으면 누군가 젊은 영화인이 와서 발전시켜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하지만 무료상영에 돈이 되지도 않고, 일은 많고, 큰 스펙이 되지 않는 이 일을 누군가가 나서서 하기는 힘들었겠죠. 중간에 그런 기회도 있었지만, 잘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계속 하게 된 거에요.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아 진행하다보니 4회까지 왔고, 저희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중심으로 극영화나 다양한 영화들을 아우르자는 의미에서 5회 때부터 춘천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제명을 바꾸어 행사를 진행했어요.”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영화제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김 위원장의 고민은 늘어났다. 누군가 자신에게 전문 영화인이 아니라는 표현을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전문 영화인들이 전문적으로 영화제를 키워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상설 조직으로서 상근 사무국장 체제를 만들고 싶어 했다. 해외 영화도 상영되는 다양성을 펼치고 싶기도 했다. 2018년 개최된 5회 춘천영화제에서는 국내외 좋은 영화들을 전문 프로그래머가 선정하고 상영해 좋은 반응을 받았다. 영화제를 5년이나 개최한 김 위원장은 어느새 전문 영화인이 되어 있었다.

“춘천은 참 좋은 곳이에요. 토박이 출신이 많이 서울 등지로 나갔지만, 대학교도 많고, 교육의 도시고, 젊은 대학생들도 많죠. 인물도 많이 나고, 자연 환경도 훌륭하고 먹거리도 풍부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요. 그렇기에 저는 독립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재미를 춘천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영화인들을 초대하고 싶었어요.”

춘천영화제 1회~5회까지 공식포스터 (자료=춘천영화제 홈페이지)
춘천영화제 1회~5회까지 공식포스터 (자료=춘천영화제 홈페이지)

 

지역언론 '춘천사람들'에 게재한 김혜선 위원장의 글 (자료=기사 캡쳐)
지역언론 '춘천사람들'에 게재한 김혜선 위원장의 글 (자료=기사 캡쳐)

그리고 작년인 2019년 6회 춘천영화제를 개최하였다. 춘천시나 강원도에서 지원을 받았고, 명실상부한 지역영화제로 인정받아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지원을 받았다. 이성규 감독이 원했던 독립영화제의 기반을 마련한 한 해였다고 김혜선 위원장은 자평했다.

2019년 6회 춘천영화제 공식 포스터 (자료=춘천영화제 홈페이지)
2019년 6회 춘천영화제 공식 포스터 (자료=춘천영화제 홈페이지)

혜선, 독립영화예술의 현주소를 직시하다

이성규 감독이나 독립영화예술을 위해 현장에 뛰고 있는 사람들을 김혜선 위원장은 잘 모른다. 상업영화나 예술영화가 가진 대중성과 작품성을 이해하기 위해 김 위원장은 더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그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춘천영화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자꾸 마음이 급해지겠지만, 조금 더 원칙을 생각하려고 해요. 성규 형이 말했던 그 마지막 당부도 그렇고, 춘천영화제 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의리와 명분이에요. 성규 형과 같이 한 것에는 의리도 있고, 하나가 되어 이 영화제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명분도 있겠죠. 이것은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될 거예요. 오랜 시간 같이한 추억과 좋은 기억들,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봐요.”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2019년 6회 춘천영화제는 4일간 진행되었고, 1회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상영작이 늘었다. 역대 최다 관객들이 참여하였다. 독립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매진사례도 많았고, 역대영화제가 가지지 못한 기록들도 남겼다. 본선에 오른 작품을 연출한 많은 감독들이 춘천을 찾아 GV행사를 진행했다. 전문 영화인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을 꾸려서 경쟁영화제로 전환시켰다. 특별상영도 진행하고, 청소년영화제를 처음으로 도입해 큰 호응을 이끌어 낸 것도 작년이었다. 춘천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패널단을 조직해 교육과 참여를 이끌어 낸 것도 큰 성과였다. 패널단원들이 매주 영화 칼럼을 강원도민일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2019년 6회 춘천영화제 개막을 선언하는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춘천영화제)
2019년 6회 춘천영화제 개막을 선언하는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춘천영화제)

 

2019 춘천영화제 시상식 후 기념 촬영 (사진=춘천영화제)
2019 춘천영화제 시상식 후 기념 촬영 (사진=춘천영화제)

“작년에 강원도에 2개의 국제영화제가 처음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어떤 것이 성공이냐는 의미와 가치를 논하기 전에, 모두 같이 생각해 봐야 할 쟁점들이 많이 있겠죠. 마찬가지로 춘천영화제 또한 반성하고 풀어야할 숙제들이 많다고 봐요. 꽤 큰 예산이 집행되는 국제영화제에 비해 춘천영화제는 매우 작은 예산과 인력으로 마련됩니다. 하지만 춘천영화제는 시민들이 기획하고 만든 영화제에요.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 연결된 행사고, 춘천의 문화 커뮤니티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어려운 부분들도 발생하죠.”

김 위원장은 좀 더 좋은 영화를 많이 초청하지 못한 점을 제일 큰 문제로 뽑았다. ‘한국 독립영화의 현주소’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작년 영화제에서 초청하고 싶은 영화들을 더 가지고 못 온 점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상설 인력이 없는 것도 뼈아픈 현실이다. 영화제의 모든 자료와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고 계속해서 고민할 인력들이 부족한 현실이다. 그 외에도 해결하고 나아가야할 산적한 과제들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김혜선 조직위원장 KBS강원 인터뷰 (사진=김혜선 페이스북)
김혜선 조직위원장 KBS강원 인터뷰 (사진=김혜선 페이스북)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오히려 춘천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여유 있고 자유롭게 더 많은 것들을 해 볼 생각이에요. 많은 예산과 규모를 논하기 이전에 춘천영화제 만의 정체성을 계속 생각해 볼 생각이에요. 그것은 강원도의 모든 영화제가 똑같이 고민하고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외롭고 힘들게 작업하는 독립영화인에 대한 애정을 더 확대해 갈 생각이에요. 아시겠지만, 독립영화라 하더라도 미개봉작이 많잖아요. 그 부분을 더 관심 가져야 할 거에요. 성규 형이 가졌던 마음 중에 그게 큰 자리를 잡고 있다고 봐요.”

김혜선 위원장은 영화인이 아니었다. 그저 춘천에서 태어 자라고 일하고 결혼한 평범한 주부였다. 그는 왜 놀았을까? 그 의문은 한 사람의 지인으로부터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의리와 명분이었다고 말했지만, 김 위원장은 그 힘든 영화제를 최전선에서 힘겹게 이끌어 오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재미있어 한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 김 위원장은 그 친구들과 다시 의리와 명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더 재미있고 멋지게 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놀다 보니 그녀는 전문 영화인이 됐다. 강원도에서 굉장히 중요한 영화제를 이끄는 상징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춘천영화제 김혜선 조직위원장 (사진=임준 기자)
영화제 기간동안 춘천영화제는 항상 이성규 감독 자리를 마련해둔다 (사진=김혜선 페이스북)
영화제 기간동안 춘천영화제는 항상 이성규 감독 자리를 마련해둔다 (사진=김혜선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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