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나인 연중기획] 2020년 잘 노는 사람들⑨,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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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나인 연중기획] 2020년 잘 노는 사람들⑨,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 임준 기자
  • 승인 2020.03.02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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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놀고 성공하는 사람들과의 유쾌한 만남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오늘 한 그루의 책을 심다

[프레스나인] 임준 기자=2020년, 사람들은 새로운 사업을 꿈꾼다. 다소 거창한 계획은 희망도 주지만 기대가 커져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된다. 몸이 굳어지고, 계획은 틀어진다.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본인이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면 어떨까? 노는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한다. 2020년, 정말 잘 노는 사람들 50인을 취재한다. 그 아홉 번째 순서로 북스타트 운동을 총괄하고 있는 이경근 실장을 만나보았다.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돈을 벌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신세계와 만나다 

이경근 실장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본인은 평범한 소녀로 자랐다고 한다. 집안 형편도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들처럼 집과 학교를 오가며 성장했다. 하지만 공부하기 싫었고, 시험보기 싫었고, 학교가기 싫은 그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이 실장은 말한다. 그리고 점수에 맞춰 경희대학교 영문과를 진학했다. 

“대학 들어가니까 좋더라고요. 초반에 막걸리 먹고 놀았어요. 학생운동 하는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됐어요. 제가 보기엔 저도 모르고 그네들도 모르는 것 같은데 학생 운동하는 친구들이 왜 그렇게 확신에 차 있었는지 이상하더라고요. 영어 잘하면 취직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졸업하고 취직하고, 살아남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이 실장은 직장 생활을 하다 사업을 시작했다. 남편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는 성평등 의식을 이 실장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은 2005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한다. 벤처 기업을 거쳐 2000대 초반에 유행처럼 번졌던 테마전시회 등을 기획하면서 정신없이 살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사업을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았고, 정신적으로나 상황적으로 너무 진이 빠져 있었다. 사업을 정리하고 2005년 도정일 교수가 운영하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하 ‘책사회재단’)에 인사하러 오게 되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도 교수님께 인사하러 왔었어요. 그때 선배가 교수님 밑에서 북스타트 운동을 시작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죠. 교수님 생각에는 사업적인 마인드를 가진 인물에게 북스타트 운동을 맡기고 싶어 하셨죠. 그래서 제가 2006년 초에 북스타트 운동 담당으로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정말 놀랐죠. 책사회재단은 비영리 사회단체잖아요. 영리적 수익이 없어도 운영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신세계였어요.”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책사회재단은 시민단체가 연대해서 만든 비영리 시민운동 단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문화연대’, ‘한국작가회의’,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 ‘어린이도서연구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학교도서관살리기 국민연대’, ‘한국도서관협회’, ‘한국출판인회의’ 이렇게 아홉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만든 연대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책을 읽기 위한 독서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전국에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학교도서관 등의 도서관 건립 및 운영 사업과 독서운동 및 정책에 관한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책사회재단에 있으면서 인문학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이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어요. 물론 무조건 좋기 만한 것들은 아니었어요. 내가 가진 한계에 대한 것도 알 수 있었고, 약자들이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죠. 북스타트 운동 속에서 그 실체를 더 구체화해 나갔습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홈페이지 (자료=캡쳐)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홈페이지 (자료=캡쳐)

북스타트 운동은 1992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북스타트 운동은 아기들로 하여금 책과 친해지자는 취지를 가지고 1세 아기들에게 책을 나눠주는 캠페인이었다. 이 실장이 책사회에서 북스타트를 시작한 2006년 당시에는 외국에서 전래된 독서 운동이 난립한 시기였다. 지금은 거의 북스타트 운동이 가장 성공적인 독서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은 돈 버는 게 중요하고, 성장해야 하고,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는데, 책사회재단은 전혀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는 사회였죠. 간사들이 책을 권해주는데 읽고 놀랐어요. 완전히 다른 시야를 갖게 되었죠. 또한 북스타트 운동을 통해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자신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 국면 전환이 되었어요.” 

북스타트 책 꾸러미 (사진=북스타트코리아)
북스타트 책 꾸러미 (사진=북스타트코리아)

비경쟁 독서, 비경쟁 토론 모임으로 창의성을 회복하다 

부모들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 때 독서운동이 유행처럼 불었던 시대에 부모들은 너도 나도 자녀에게 책을 읽게 하였다. 하지만 자녀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정말 재미있고, 행복한 독서가 아니었다. 경쟁 사회에서 이기기 위한 독서, 누구보다도 더 잘난 토론으로 세상에서 기득권이 되는 방법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시대의 기득권이 문제잖아요. 그들은 그들만의 담론을 만들고 사람들을 편입시켜요. 그래서 책 한 권 읽는 것도 자유롭지 않게 만들죠. 북스타트는 이제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냥 책과 친해지자는 목적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15년간 진행하면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영역이 늘어났어요. 지자제의 60% 이상이 북스타트 운동에 같이하고 있어요. 이제는 광역 지방단체로 넓혀서 운동이 계속 확대되고 있어요. 저희 독서 운동은 학습을 하는 게 아니에요. 이 책을 읽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학습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창의성의 개발이 목적이에요.”

2020년 충북교육청 교사 연수 (사진=이경근 실장)
2020년 충북교육청 교사 연수 (사진=이경근 실장)
2020년 충북교육청 연수 (사진=이경근 실장)
2020년 충북교육청 교사 연수 (사진=이경근 실장)

과거에는 선배가 살아온 경험과 생각을 후배 세대에게 이야기 한다. 다양한 직업이 없었고, 자신의 생각을 펼칠 기회가 적었던 과거에는 그런 주입식 지식의 전달이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이 실장은 힘주어 말한다. 몇몇 이름 있는 인문학 강사에 의해 내 열등감을 확인하고, 그들과 같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학습하는 시대는 이미 과거의 전유물이라고 이경근 실장은 생각한다.

“도서선정위원회가 매년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북스타트 책을 선정해요. 목적이 분명한 책들은 제외되고, 상업성이 아닌 공익성이 더 부각된 책들을 선정해요. 그리고 정치성을 가급적 배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출판사나 책들에 대해서도 어떤 편견을 가지려 하지 않아요. 그리고 책을 선정하기 위해 지역 학교나 도서관에 책을 보내요. 3~4개월간 교사들, 엄마들, 사서들에게 책을 충분히 읽히고 의견을 들어 같이 선정하는 객관적인 과정을 거쳐요. 그리고 중고등학교 책들은 학생들이 직접 추천하는 책들 중에 선정합니다.”

학부모 독서 교육 (사진=이경근 실장)
학부모 독서 교육 (사진=이경근 실장)

이 실장은 책사회재단 내에서 간사들과 독서모임을 한다. 그리고 일선의 교사나 도서관 사서들, 지역 주민들과 비경쟁독서토론을 연다. 특별한 목적이 없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하는 모임이다. 책을 읽는 것이 일이나 학습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처럼 여기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모임도 현재 전국으로 꽤 많이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초기 10년간은 우수한 인문학 강사를 북스타트 운동에 일환으로 전국으로 보냈죠. 그런데 이게 한계가 있더라고요. 자유롭게 책을 가지고 떠들며 놀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북스타트 책모임을 통해 교사, 학부모, 학생까지 참여하는 운동으로 지난 4년간 진행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요. 아직까지는 글쓰기 까지는 조금 문턱이 높고, 토론으로 자유로워지는 단계인거 같아요.”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이 실장은 사람이 지식에 눌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누구나 다른 생각과 색깔을 가지고 있다. 결국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책을 가지고 잘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쟁하지 않고, 무엇보다 그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실장은 요즈음에는 게임에도 인문학 정서가 잘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과거 세대는 무조건 책이었잖아요. 그리고 게임 때문에 책을 안 읽는다고 주장하죠. 저는 그 게임 세대가 교사가 되어서 게임으로 독서 지도를 하는 교사들을 보았어요. 소위 디지털 세대가 주류로 등장하잖아요.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고요.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가진 속도에 맞춰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맞춰 같이 가면 될 거 같아요.”

그러면서도 이 실장은 한국 출판 현실에서 학술서가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인의 시대이긴 하고 산문이나 에세이, 여행서 등이 너무 많은 반면에 학술적인 책들은 번역서가 주류이고, 우리만의 학술서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상업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가나 비영리단체들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이 실장은 말했다.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가르칠 수도, 알 수도 없는 사람의 창의성을 발현하다 

“창의성은 기본적으로 솔직함에서 나오잖아요. 자기 혹은 타인 안에 뭔가 숨어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거잖아요. 전 기술과 도시의 발달이 가진 장점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바로 시대적으로 약자들에게 자유를 준거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기성세대가 돼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세상의 기성세대들은 왜 지방은 노인 밖에 없냐,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등의 자기 생각만 주장해요. 그럼 거기에 맞춰 젊은이들이 수단화 되어야 할까요?”

이경근 실장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스스로 각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창의성의 발현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북스타트 운동을 통해 어릴 적부터 행복한 독서,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비영리 시민단체들이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지식의 전당인 대학이 역할을 많이 해줘야 하는데 너무 상업화 되어버렸잖아요. 대학 교수들이 저희에게 대학생에 맞는 독서동아리 강의를 요구해요. 그건 아니라고 봐요. 왜 대학생들에게 교수나 사서들이 책의 선택권을 뺐어야할까요? 그들은 스스로 찾아 읽을 수 있는 성인이잖아요. 독서 능력이 아직 애들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북스타트 하면서 아기들이나 아이들을 보면 너무 행복하고 신기해요. 애들은 편견도 없고, 많은 것을 받아들이잖아요. 갓난아기들에게는 그림책을 주면 너무 좋아하고 그 영향을 깊게 받죠. 그림책이 지금 정점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즐기면 된다고 봐요.”

2년 뒤에 북스타트 운동 20주년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책읽기 프로그램으로 가장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안정적인 형태로 진화되어 가고 있다. 태국이나 일본 등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 논의나 협력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모양새로 독서 운동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임준 기자)

“우리 젊은 시절에는 사회의 폭력성과 기득권의 획일화가 심했잖아요. 저희가 요새 독서토론에 방점을 찍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은 바로 자유로운 다양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봐요. 분명 아직은 초창기라고 판단 되요. 누구든 완전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내 안의 창의성을 발현하기 위한 커뮤니티 안에서 워크샵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분명 그것은 정해진 답이나 결과가 아닌, 뜻밖의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우리 사회가 가져가야할 창의적 형태의 모델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도 너무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고, 행복하게 잘 놀고 있습니다. 같이 책 한권 읽으실래요?”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이경근 실장)
북스타트 이경근 실장 (사진=이경근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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