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나인] 병은 일찍 발견할수록 좋다.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유전병은 더욱 그렇다. 일부 유전병은 얼마나 빠르게 진단해 치료하느냐에 따라 남은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신생아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선별검사가 중요한 까닭이다.
정부는 올들어 신생아 선별검사 급여 대상 질환에 리소좀축적질환(LSD) 6종을 포함시켰다. 신생아의 성장과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질환들을 조기에 찾아낼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공보건정책의 확대로 인해 희귀병에 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했다.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사노피 주최 ‘리소좀축적질환 신생아 선별검사 급여 확대’ 세미나에 참석한 채종희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는 “리소좀축적질환은 소아 시기부터 증상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비가역적인 신체 손상을 유발한다”며 “일찍 진단해서 증상이 진행되기 전에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름부터 생소한 리소좀축적질환은 유전적 원인에 의해 특정 효소에 결핍이 나타나 대사 이상이 발생하는 질환을 말한다. 몸에 필요없는 물질들이 분해되지 않고 체내 곳곳에 쌓여 손상을 일으키고 합병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리소좀축적질환은 7000명에서 9000명 중 1명 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핍된 효소 종류에 따라 약 50종의 리소좀축적질환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치료 및 관리가 가능한 병은 폼페병, 뮤코다당증(1형·2형), 고셔병, 파브리병 등 6종이다.
채 교수는 이 6종의 질환에 대해 무엇보다 빠른 진단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뮤코다당증 1형으로 진단된 남매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5살 때부터 치료를 시작한 누나는 골격계에 이상이 나타났으나 생후 5개월부터 치료를 받은 남동생은 정상 골격을 갖게 됐다. 두 사람이 성인이 된 뒤에는 외형적 차이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근육이 망가져 호흡 곤란, 심근병증 등이 일어나는 폼페병은 조기 발병형과 후기 발병형으로 나뉜다. 조기 발병형의 경우 두 돌 전에 치료하지 않으면 대부분 사망한다. 하지만 출생 직후 치료에 들어갈 경우 90% 이상 생존이 기대된다고 채 교수는 설명했다. 고셔병과 파브리병도 마찬가지로 조기 진단과 치료로 환자 생존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채 교수는 “신생아 선별검사로 질병 발견 후 치료해서 환자 본인이 병이 있는지도 모르게 사는 경우가 있다”며 “혹시 오진이 아니었을까 느낄 정도로 조기 진단, 조기 치료의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채 교수에 이어 발표에 나선 이정호 순천향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신생아 선별검사 의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신생아 선별검사는 특정 유전 질환 및 유전적 장애가 발현하기 전에 미리 진단,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공중 보건 프로그램이다. 리소좀축적질환 선별검사는 앞서 2017년까지는 주로 연구목적으로 시행됐으나 이후 의료계와 학계의 요청에 따라 기술 검증, 식약처 승인 등을 거쳐 올해부터 보험 급여를 받게 됐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출생하는 생후 28일 이내 모든 신생아는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조기에 리소좀 효소의 이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선별검사를 통해 리소좀 효소 이상 소견을 받은 환아는 가까운 권역별 희귀질환 전문 기관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 여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 된다.
이 교수는 “환자의 긍정적인 예후를 위해 조기 치료가 필수적인 질환 특성상, 조기 진단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존재해 오던 상황”이라며 “올해 신생아 선별검사의 리소좀축적질환 급여 신설은 매우 고무적인 치료 환경 변화”라고 평가했다.
다만 선별검사 이후 치료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해당 과정에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등의 여러 부처가 관계돼 있어 행정력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리소좀축적질환 이외의 희귀질환에 대해서도 선별검사를 계속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이번에 신생아 선별검사로 새로 진단된 환자들이 빠르게 다음 조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각 질환과 치료 과정에 대한 대국민적 인식 제고와 논의가 필요한 단계”며 “희귀질환 환자의 생애 동안 들어가는 의료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 도입이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