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질서 회복에 신중했으나, 올해부터는 단호한 조치" 방침 밝혀
사전예방적 검사ㆍ자체감사요구제 등 미작동 판단
[프레스나인] 금융감독 당국이 과거와 달라진 감독방침을 내놨다. 과거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에서부터 시작된 사전예방적 감독이 실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9년 사모펀드 사태 해결책을 내놨지만, 그로부터 또다시 홍콩 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가 불거졌고, 2008년 이후부터 본격화된 제2금융권의 국내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집중투자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경기회복의 걸림돌을 치우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은 부동산PF 부실정리를 적극 추진하고, 금융시장 불안요인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감독수장은 시장에서의 퇴출도 불사하겠다는 원칙까지 내놨다. 그동안 사전예방적 감독과 검사를 강조하던 기조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금융안정이 위협받고 있고, 금융질서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5일 여의도 금감원 대강당에서 열린 올해 업무계획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올해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감독방향으로 '공정한 금융'을 중점 추진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는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단기 실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면서 "리스크관리에는 소홀한 채 단기적 이익은 사유화하고 뒤따를 위험을 소비자 등 사회에 전가하는 행태 등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이 지적한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의 전형은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은 부동산PF 집중투자와 ELS 불완전판매를 통한 과도한 성과급 수취 등이다. 증권회사와 보험사, 저축은행, 캐피털사 등은 2008년 이후 국내외 부동산PF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사업장에 대한 실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작정 투자에 나서기도 하고, 해외 부동산 투자 시에는 주관사가 투자자를 기망하는 행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부동산PF 사업장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증권사 임원이 적발되기도 했다. 은행권은 사모펀드 사태로 인해 옵션매도구조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가 어려워지자, 성과지수(KPI)를 변형해 홍콩H지수 연계 ELS를 신탁에 편입한 주가연계신탁(ELT)을 적극적으로 판매했다. 은행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금지라는 원칙이 만들어졌음에도 신탁을 통한 우회를 통해 ELT를 판매의 도구로 활용했다.
제2금융권의 부동산PF 집중투자와 은행권의 ELS 불완전판매는 감독당국이 이미 감독실패를 통해 보완책을 갖고 있었음에도 감독에 실패한 결과물이다. 감독당국은 은행에 대해서는 부동산PF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을 통해 부동산PF 대출한도를 촘촘하게 관리했지만, 비은행권 부동산PF에 대해서는 '증권회사 대체투자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이나 '보험회사 대체투자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사전예방적 감독이나 검사에 실패했다.
은행의 ELT 감독실패도 마찬가지다. 감독당국은 2019년 사모펀드 사태 대책을 발표하면서, 은행권이 요청한 기존 판매 ELT 내에서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를 허용했다. 그러면서 감독당국은 매월 신탁 등 고위험 금융상품 관련 판매영업보고서를 징구해 분석하기로 했다. 신탁 편입자산에 대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적용, 편입되는 고난도 금융상품(공모)에 대한 투자설명서 교부 의무화 등도 밝혔었다. 그렇지만 홍콩H지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과정에 감독당국이 판매 과정에 개입해 사전적으로 판매 등에 대해 개선을 지시한 사례는 전무한 실정이다.
금감원은 이미 2020년 검사업무 운영계획에서 '고위험 금융상품 영업행위 집중 점검'이나 '해외 부동산 등 고위험자산·상품으로의 쏠림현상 집중 점검'을 밝힌 바 있다. 보험회사 검사 시 법인보험대리점(GA)에 대한 연계 검사 등도 당시 통합 점검 계획을 밝혔지만, 실행되지는 못했다.
이 원장은 은행의 과도한 이자장사와 부당 수수료 수취, 꺾기와 보험금지급거절 등의 부당관행에 대해서도 엄격한 차단 방침을 밝혔다.
이 원장은 " 금융회사가 과점적 체제에 안주해 혁신이나 소비자 효익 제고 노력 없이 규제(라이선스) 차익을 향유하거나 금융사의 우월적 지위만을 이용해 소비자의 몫을 가로채는 행위를 엄격히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국민들께서 모은 소중한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증식시키는 일이며, 이는 금융회사의 존재의 이유"라면서 "그간 금융시장 환경 등 제반 요건을 신중히 감안해왔으나 올해부터는 고객의 이익을 외면하고 정당한 손실 인식을 미루는 등의 그릇된 결정을 내리거나 금융기관으로서의 당연한 책임을 회피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시장에서의 퇴출도 불사하겠다는 원칙 하에 단호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의 '공정한 금융'에 대한 강조와 이를 위한 시장 퇴출 불사원칙 천명은 최근 5년간 유지돼 왔던 '사전예방적 검사' 기조에서 완전히 달라진 감독방향이다. 사전 리스크 예방 기능이 추가된 검사 체계 개편이나, 자체감사요구제 등에도 금융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