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측 변호사 "원고 자필서명한 처음 본 문서들"…판사 "서증 새롭고 오늘 처음 봐"
상속합의 서명 날인돼 상속회복청구소송 제척기간 경과 노린 듯
[프레스나인] LG가(家) 상속지분을 둘러싼 분쟁 소송의 핵심 쟁점이 유언장 존재 여부에서 새로운 서증(書證)으로 변화됐다. 상속회복청구소송은 상속에 대한 침해를 인지한 뒤 3년이라는 제척기간이 경과하면 효력이 소멸되고, 새로운 서증은 상속에 대한 합의의 증거로서 강력한 효과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박태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상속회복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에서 피고 측은 증인으로 출석한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에 대한 반대신문에서 김영식 여사의 서명이 날인된 상속재산분할합의서를 공개했다.
상속재산분할합의서는 구광모 회장이 선대회장의 ㈜LG 경영권 지분 중에서 2.52%를 제외한 지분을 전량 상속받는 것이었다. 당초 상속재산분할협의서에는 구광모 회장이 선대회장의 지분 11.28%를 모두 받는 것이었으나, 김영식 여사가 딸들에게도 지분이 상속돼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수정됐다. LG 재무관리팀에서 작성했다고 하는 상속재산분할합의서에는 김영식 여사의 서명 'yskim'이 날인돼 있었다.
상속재산분할합의서 외에도 선대회장의 개인재산인 미술품과 한남동 자택에 대한 분할에 대한 합의서도 공개됐다. 상속재산인 미술품 분할합의서에는 김영식 여사의 서명과 함께 미술품 각각에 대해 '연경', '연수', '김(김영식)'이라는 표시가 돼 있었다.
한남동 자택에 대해서는 김영식 여사가 소유권을 갖되, 해당 건물의 상속세는 구광모 회장이 내는 것으로 합의됐다.
피고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 이재근 변호사는 합의서 사본에 기재된 '본인 김영식은 고 화담 회장님(구 선대회장)의 의사를 좇아 한남동 가족을 대표해 ㈜LG 주식 등 그룹 경영권 관련한 재산을 구광모에게 상속하는 것에 동의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김 여사의 자필서명을 확대해서 보여줬다.
상속회복청구소송을 제기한 원고1(김영식)이 원고2(구연경)·원고3(구연수)를 대신해서 상속재산분할에 합의했다는 자필서명이 담긴 서증이었다. 서증은 서류상의 증거로 상속회복청구소송에서 상속에 대한 합의서가 존재한다면, 상속회복청구소송이 무효화될 수도 있다.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권이 침해된 것을 안 날로부터 3년을 경과하면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날 증인신문에서 하범종 사장은 선대회장의 유지가 담긴 승계메모가 폐기됐다고 했다. 원고 측에서 유언장으로 생각할 수 있는 승계메모는 폐기된 반면에 상속재산합의서는 보존돼 있고, 이날 재판에서 서증으로 인정됐다.
피고 측 대리인은 박성곤 ㈜LG 재무관리팀 부장과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의 상속세 연부연납 대출 관련 서류 요청과 답변을 담은 문자메시지도 공개했다. 원고들이 상속재산분할에 대한 합의를 마쳤고, 상속세에 대한 절차와 방법까지 상세하게 안내받았다는 취지였다.
하범종 사장은 '원고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시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해서 분합합의서가 작성됐나요'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하 사장은 "소송이 있기 전까지 매월 (재산관리에 대해) 보고했다"고 답했다. 피고 측 대리인은 구연경 대표가 2023년 1월에 개인재산과 관련한 문자메시지를 김성기 ㈜LG 재무관리팀 상무(재경임원)에게 보낸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당초 이번 변론기일에서는 유언장 존재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예상됐으나, 피고 측에서 김영식 여사의 자필서명이 담긴 상속재산분할합의서를 공개하면서 재판을 둘러싼 쟁점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새로운 서증에 대해 원고 측 변호인은 "원래 증인신문과 동떨어진 서증이 많이 나왔다. 오늘 처음 보는 문서에 기초해서 증인 신문을 하기에 반대 신문이 어렵다. 원고가 서명한 자료도 있다. 즉석에서 신문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당황해했다.
재판장 역시 "오늘 변론기일 전까지 예정됐던 서증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많이 제출됐다"면서 "원고 측에서 서증을 검토하고 반대신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원고 대리인의 요청사항이 비합리적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피고 측 소송대리인인 강석훈 변호사는 "서증은 문서 작성일자가 모두 남아있는 문서다. 문서에 의해 입증되는 걸 증인에게 확인하는 과정이다. 원고 측이 소송을 끄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지만 재판장은 "피고 측의 서증들이 새롭고 오늘 처음 본 것이다. 반대 증거와 시간을 드려야 한다"고 추가 증인신문을 결정했다.
하범종 사장에 대한 추가 증인신문은 다음달 16일로 잡혔다. 이날 상속재산분할합의서에 김영식 여사가 서명한 것을 두고 쌍방간 공방이 이뤄지면서 서증의 진정성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