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메모 정식 유언장 아니고 효용가치 없어서 실무진 폐기"
김영식 여사 자필서명 담긴 '상속재산 합의서' 공개
[프레스나인]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유지(遺旨)가 담긴 경영권 승계문서는 폐기됐으나, 상속재산 분할합의서는 LG그룹 지주회사의 재무관리팀에 온전히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은 지난 5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박태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상속회복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선대회장의 승계 메모는 정식 유언장이 아니어서 상속재산 분할협의서 작성을 마친 이후에는 효용이 없어서 재무관리팀 실무진이 폐기했다"고 진술했다.
해당 승계메모는 구본무 선대회장이 2018년 4월 뇌종양 판정을 받고 나서 수술을 받기 직전에 하 사장에게 남긴 유지로, 하 사장이 유지를 정리해 구본무 선대회장의 자필서명을 받은 문서다. 하 사장은 해당 승계메모를 2018년 6월부터 상속절차가 진행되면서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에게 여러 차례 보여줬다고 증언했다.
하 사장은 법정에서 "상속분할 협의를 위해 직접 (한남동 자택을) 갔고,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씨가 계셨다. 여러 차례 (메모를) 보여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별히 놓고 가라는 지시가 없었다"고 승계메모 사본을 남겨두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해당 승계메모는 LG 재무관리팀 서류보관함에 보관되다가 상속세 납부 등의 상속절차가 마무리된 후 실무진이 폐기했다.
선대회장이 자필서명까지 한 승계메모를 폐기한 이유에 대해 하 사장은 "유언장도 아니고 (승계) 프랙티스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참고로 받은 자료다. 그대로 상속분할이 이뤄지지도 않았고, 폐기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했다.
승계메모가 폐기된 것과 달리 상속분할협의서는 사본 형태로 보관돼 있다.
하 사장은 "상속분할협의서 사본을 원고와 피고에게 보여주고 사무실에 보관했다. 원고와 피고가 모두 보관해달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하 사장을 중심으로 한 LG 재무관리팀은 2018년 10월초 1차 상속재산 분할안을 준비했고, 김영식 여사가 딸들에게도 LG 주식 배분을 요청하면서 구연경·연수씨에게 LG 의결권 지분 2.52%를 분담하는 2차 협의안을 마련했다. 2차 상속재산협의안에 대해 김영식 여사 등이 공익법인 기부처를 7곳으로 늘리고, 기부금액 6억원 증액, 미술품 분할 등의 의견을 제시해 11월 중순께 상속재산분할 합의서가 작성됐다.
피고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율촌 이재근 변호사는 이날 '본인 김영식은 고 화담 회장님(구 선대회장)의 의사를 좇아 한남동 가족을 대표해 ㈜LG 주식 등 그룹 경영권 관련한 재산을 구광모에게 상속하는 것에 동의함'이라는 김 여사의 자필서명이 담긴 상속재산 분할합의서를 공개했다.
해당 합의서를 작성한 주체는 LG 재무관리팀 직원이라고 피고 측은 밝혔다.
피고측 소송대리인은 LG 재무관리팀 직원이 작성한 상속재산 분할협의서 1차 협의안과 2차 협의안, 최종 합의된 합의서 등을 차례대로 공개하기도 했다.
하 사장은 '2018년 11월 상속재산합의서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유지메모 존재 여부가 원고와 피고 간에 이슈가 되지는 않았나'는 질의에 대해 "(유지메모 존재 여부는)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지난 2월 상속회복청구소송을 제기한 선대회장의 미망인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ㆍ연수씨는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언장이 있다고 속아서 상속재산분할안에 합의했다는 입장이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하 사장은 유언장이 아닌 승계메모를 원고들에게 여러 차례 보여줬고, 이를 기반으로 상속재산합의서가 작성됐다고 했다. 다만 원고들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승계메모는 폐기됐고, 상속재산합의서는 고스란히 남아 있어 보존된 문서를 둘러싼 공방이 예상된다.